폴더를 뒤적거리다가 2007년 "디워"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에 썼던 글을 발견해 올린다. 글을 쓸 당시에는 "디워"를 관람하지 않았다. 몇 년 지난 뒤에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일부 보기는 했지만 제대로 감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리뷰 카테고리에 넣지 않고, 단상과 잡담 카테고리에 올린다. 어차피 글의 주제도 영화 리뷰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 비하면 "디워"나 심형래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평가가 크게 달라진 상태여서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의 영화 "디워"는 결국 극장에서 보지 않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전혀 내 취향에 맞지 않을 듯한 영화를 호기심만으로 봤다간 후회할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런 식으로 낭비하기엔 요즘 주머니 사정도 별로 안 좋다. 케이블이나 주말의 명화를 기대해야겠다.
그동안 주워들은 입소문과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디워"의 스토리가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부실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CG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도 분명한 것 같다. 현재의 소란은 "디워"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이 매우 안 좋은 탓에 적잖은 "디워"의 팬들이 불만을 품고 인터넷상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여론을 조성한 데 따른 것이다.
첫번째 논점. 영화 자체로서 "디워"의 가치는 어느 수준인가. 평론가들의 평에 따르면 기본적인 서사의 연계성과 개연성이 부재하고, 스토리가 CG기술 과시라는 목적에 휘둘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디워"의 옹호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으로,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오락 영화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스토리의 부족함은 용납 가능한 수준이고 CG의 훌륭함은 스토리의 문제를 상쇄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비평가들이 "디워"에 혹평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언제는 CG만 훌륭하고 스토리가 엉망인 영화들이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있던가. 없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같은 미국 블록버스터는 당대 최고의 CG기술을 자랑하는 영화들이었지만 어설픈 시나리오의 헛점들 때문에 평론가들의 조롱을 받곤 했다. 하물며 스토리 라인과 연출이 이들 영화들보다도 못하다는 소리까지 듣는 "디워"가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을수 있을 리 만무하다.
CG는 영화의 연출을 보조해 주는 도구이지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디워"의 CG가 한국 영화사상 최고 수준이 아니라 헐리웃 영화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더라도 스토리와 연출이 부실하면 평론가들에게 욕 먹는 게 당연하다. 평론가들이 "디워"를 혹평했다면 그것은 감독이 비주류인 심형래라서가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으로 보는 게 옳다. 그들은 그냥 옛날부터 자신들이 해 왔던 그대로 자기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은 앞의 블록버스터들이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들 영화들은 관객 동원에 꽤 성공을 했고, 돈도 벌었다. 평론가들의 비평과 일반 관객의 선호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평론가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꼼꼼히 따져 영화를 평한다면 적잖은 관객들은 그냥 눈요기거리를 찾아서 극장을 찾곤 한다. 아무 생각없이 머리 식히러 영화관에 가서 단순한 스토리의 괴수 영화를 즐기고 만족해 하는 장삼이사들이 세상엔 더 많다. 보통은 여기에서 끝난다. 평론가들은 영화를 비판하고, 관객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극장이나 영화 제작자는 돈을 벌고. 그런데 "디워"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논점. 왜 "디워" 옹호자들은 평론가들의 혹평에 분노하는가. 이게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같은 블록버스터가 평론가들에게 욕먹었다고 해서 일반 관객들이 그 평론가들에게 울분을 토하거나 인터넷에서 세를 조직해 대응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디워"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여러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디워" 옹호자들이 타자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기 때문으로 본다. 뒤에 논하겠지만 이는 심형래의 마케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 평론가들의 평가와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반드시 비례관계에 있지 않고, 외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디워" 팬들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간절히 원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 혹은 느끼고자 하는 것이 재미 이상의 것이라는 뜻이 되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당연한 사람의 심리이지만, "디워" 팬들의 인정 욕구는 그 스케일도 크다.무려 '세계적인 인정'을 바란다. 세계적인 인정을 노리는 영화에 '고작' 국내 평론가들이 초를 치니까 실망스럽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디워" 상영관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박수가 터지는 일도 잦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과연 박수를 받을 영화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디워"는 예술적 성취나 정치적 메시지 전달을 지향하는 영화가 아니라 시간 때우며 즐기는 오락 영화이고 철저히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영화이다.그것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괴수가 튀어나와서 도시를 때려부수는 내용의, 심지어 아동영화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국곳곳에 은둔해 있던 괴수 영화의 광팬들이 "디워"의 개봉을 기점으로 일제히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류의 영화를 보고 감격에 겨워 박수치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등장하고 있다는 게 사회적으로 이상현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요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로 소비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디워"의 열혈팬들이 등장하는 데는 심형래의 이미지 메이킹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우리 기술로 헐리웃을 점령하겠다는 애국심을 자극하는 호언장담, 마이너로서의 온갖 역경을 버티며 걸어온 감독의 인생 역전 드라마. 고쳐 말하면 "디워"의 팬들은 "디워"의 팬이 아니라 심형래의 인생 드라마에 반한 심형래의 팬인 셈이다. 이들은 영화에 대한 비판을 감독의 인격에 대한 모욕으로 치환시켜 받아들일 정도로 대상에 대한 객관화도 안 되어 있다. 그 결과가 "디워"에 부정적인 평론가들의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 몰려가 욕설 섞인 댓글로 도배하는 등의 행태이다.
그런데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 등을 살펴보면 심형래는 기본적으로 타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수 십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 왔던 학벌 위조 건도 그렇고, "용가리" 때부터 보여 주었던 사업 규모나 수익 예상액에 대한 허풍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의 작품을 깎아 내리며 오만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도 그렇다. 일종의 컴플렉스일 수 있는데, 자신부터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컴플렉스를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디워"는 이미 한국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문제는 미국 시장이다. "디워"가 과연 호언장담대로 미국 시장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의문부호로 남는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딱히 이 영화에 호의를 가지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헐리웃 입장에서는 300억이라는 제작비도 그다지 인상적인 액수가 아닐뿐더러 "디워"의 유일한 장점이라는 특수효과도 화제가 될 정도의 퀄리티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저 그런 수많은 B급 영화 중 하나로 취급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설령 "디워"가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심형래나 "디워"에 대한 열혈팬들의 사랑이 금방 사그러질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심형래가 걸치고 있는 이미지의 망토에는 실패와 시련이라는 장식물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탓이다. 아마 그들은 새로운 실패에 실망을 할 지언정 결국엔 이를 명예로운 훈장정도로 여기며 언젠가는 도래할(것이라 믿는) 성공 신화를 장식할 용도로 사용할 것이다.
이번 소동은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관객은 관객대로 자기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했으면 되었을 것을, 관객들이 평론가의 영역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기호를 강요하려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심형래감독이 벌인 영화 외적인 면에서의 언론 플레이가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거기에 외국인들에게 세계적인 무언가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컴플렉스(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여 찬사를 받고 싶다), 영화를 영상 예술이 아닌 산업적인 측면으로만 인식하는 몰취향(사람들이 많이 보고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영화다), 주류 지식인 계층에 대한 막연한 반감(잘난 척하는 평론가나 충무로가 심형래를 죽이려 하고 우리를 무시한다),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군중 심리(우리들이 나서서 심형래와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지키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영화학보다는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나름 재미있는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