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본령은 직접민주주의에 있다. 공동체의 모든 권력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동등하게 나뉘어져 있다. 권력의 행사는 구성원들 공통의 의사에 따라 수행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이 권력은 천부의 것이며 결코 박탈될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규모가 있는 현대 국가에서 있는 그대로의 직접민주제를 운영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따른다. 국가운영에 일정한 전문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 중 탁월한 일부를 선발하여 이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제라는 방식에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일찍이 루소가 지적했듯이 대의민주제 하에서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시기는 선거 기간 동안만이다. 유권자들에게 간과 쓸개라도 빼줄 듯 굽실대며 표를 구걸하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상전이 되어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 드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노예들이 자신을 부려먹을 주인을 뽑는 것, 돼지가 자신의 목을 따 줄 백정을 고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냉소도 가능하다.
다행히 권력의 피위임자들이 민주주의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대의민주제가 지니는 한계와 위험성이 그나마 억제될 수 있다. 민주적 대리자는 권력의 주인이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자 하고 그들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코자 한다. 정책에 대한 양자의 견해가 충돌을 일으킬 경우 대리인이 할 일은 권력의 원천을 설득하는 것이고, 보통의 경우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오로지 레토릭으로만 여기는 자가 권력의 대리인으로 선출되었을 경우다. 현대통령인 이명박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선출되고 나서 한 제일성은 자신은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절대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도 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이 발언은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허언이 되었다.
그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합리하고 무리한 쇠고기 협상을 강행했다.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었으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지지율이 폭락하고 취임한지 수개월만에 수도 한복판에서 수십 만의 군중들이 모여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언론을 통해 본 그의 모습은 당혹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역력했다.
당시 이명박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든가, 힘으로 억누르든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는 겁을 집어 먹고 후자를 선택했다. 폭력적인 진압이 이루어졌고, 보수 언론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색깔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는 과거 반민주 군사독재 정권에서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빨간칠을 하며 매도해야 할 국민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여론은 계속 안 좋아졌고, 몇 개월 후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그가 속한 정당은 창당 이후 처음으로 출마지역에서 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