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역사 노트

국회 동북아특위 개최 "한국 상고사 대토론회-한군현 및 패수 위치에 관한 논의"

by kirang 2015. 11. 2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rALsUDAtUM&feature=youtu.be

  2015년 11월 16일 국회 동북아역사특위에서는 "한국 상고사 大토론회-한군현 및 패수 위치 비정에 관한 논의-"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국회의원들이 이덕일에게 한번 마음껏 활약해 보라고 판을 펼쳐 준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매우 생산적인 이야기들이 나왔다. 물론 생산적인 이야기가 이덕일 입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학계의 인물은 공석구, 윤용구였으며, 사이비 역사학 쪽 인물은 이덕일, 복기대였다. 이중 공석구가 "태강지리지" 기록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발표를 하였다. 그는 "태강지리지"의 이본을 정교하게 비교 분석하면서, 이 책이 서진대에 처음 편찬된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을 보면 장기간 다수 경로로 필사되는 과정에서 후대의 내용들이 계속 가필되는 모습이 확인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즉, "사기색은"이나 "통전" 등에서 인용된 "태강지리지"의 내용은 이러한 후대의 가필이 섞인 것이며, 서진대에 편찬되었다는 "태강지리지"의 원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는 "태강지리지" 기록의 사료적 가치는 근본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었다. 313년 한반도의 낙랑군이 고구려에 병합된 이후 요동 지역으로 넘어간 낙랑군 잔여 세력은 이후 몇 차례 위치가 옮겨지는데, 위 기록은 그러한 후대의 지리 정보가 반영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당대의 1차 사료라고 "태강지리지"를 제시하였던 이덕일의 논지는 정밀한 사료 비판을 통해 뿌리부터 논파되었다.

  이 토론회는 이덕일의 사료 이용과 해석 수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흥미로운 모습도 연출되었다. 토론 상대자인 윤용구는 낙랑군 재평양설도 모두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것이고 현재 학계의 연구도 이러한 실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 일제 시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동안 이덕일이 낙랑군 재평양설이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 모두 거짓임을 폭로한 것이다. 정약용 같은 조선 시대 실학자들이 식민사학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이덕일은 후대 학자가 어떻게 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1차 사료에 어떻게 적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반박을 한다. 문제는 이덕일이 기세 등등하게 1차 사료라고 제시한 "한서"나 "후한서" 등의 내용에 대해 윤용구가 그건 1차 사료가 아니라 다 후대 사람이 붙인 주의 내용이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대망신을 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이덕일은 갑자기 180도 바뀐 주장을 늘어 놓는다. 후대에 붙은 주라고 해도 전 시기부터 축적된 지식을 다 담고 있는 것이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불과 몇 분 전에 1차 사료를 강조하며 자기가 했던 말을 다 뒤집어 버린 셈이니 꼴이 우스워졌다. 

  물론 연구에 있어서 후대에 붙은 주도 중요한 참고 대상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후대 학자의 의견이 아니라 1차 사료가 중요한 거라며, 1차 사료만 보면 다 해결된다고 필요 이상으로 거들먹거렸기에 처참한 처지가 되었다. 실상은 그가 본문과 주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함께 참여한 복기대도 엉뚱한 소리를 늘어 놓다가 무안을 당했다. 자기는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성촌의 개수를 다 세어봤는데, 기존 학계는 이거 세어 본 사람이 없다고 열을 올리며 학계의 불성실함을 성토했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공석구가 자기가 이미 1989년 언저리에 쓴 논문에서 다 세어 봤다고 지적한 것이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별 근거도 없이 학계의 연구 역량을 폄훼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역사학자들이 옆에 앉아 있으니 그런 '뻥'도 앉은 자리에서 바로 들통이 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