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민주연합 내부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문재인의 '문, 안, 박' 연대 제의에 대해 안철수는 '혁신 전당 대회'를 열자는 역제안을 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안철수의 제안은 새정치 민주연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라 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이대로는 총선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혁신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다. 그런데 그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모른다. 알 수 없다. 안철수는 국민들이 혁신을 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혁신의 내용은 그럼 무엇인가. 이 역시 실체가 없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던가. 소비자들은 자기가 뭘 원하는 지 모른다고. 만들어서 쥐어 주면 그제서야 자신이 원한 게 이거였다고 말한다고.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관성적으로 혁신을 원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혁신의 내용이 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정치인들의 역할은 앙상한 '혁신'의 이미지에 단단한 실체와 현실성을 부여해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안철수의 정치는 어떠한가. '혁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정체 불명의 혁신이다.
새정치 민주연합에서는 김상곤 혁신 위원장 아래 이미 혁신안이 나온 바 있다. 안철수는 이것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럼 고치고 보완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고치고 보완할 것인가. 안철수의 비판에서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김상곤의 혁신안에서는 정량적 분석에 따라 하위 20%의 국회의원에게는 공천권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나름대로의 물갈이 안이다. 이에 대해 안철수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하위 20%의 물갈이가 아니라 상위 20%를 제외한 모든 국회의원들의 물갈이라고 주장한다. 말은 통쾌하다. 하지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내 눈에는 '국회의원들은 다 쓰레기이고, 싹 다 갈아치워야 해'라는 장삼이사들의 깊이 없는 생각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만 보인다.
안철수가 국회에 들어온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런데 안철수의 비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비누 거품처럼 이미지만 둥둥 떠 있다. 흔히 이미지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치인은 국민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이들이다. 어느 정도 이미지를 이용한 플레이는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미지'만' 있는 경우이다.
정치에 대한 안철수의 이해도는 대중을 리드하고 비전을 제시하기엔 너무 수준 낮다. 지난 대선에서는 그런 그에게 대중들의 열망이 모였다. 정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정치를 바꿔달라는 열망이 모였으니 비극이다. 결국 안철수가 내놓는 개혁안들은 구체성이 결여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일 수밖에 없었고, 간혹 구체성을 띤 것은 대개 헛발질이었다. 국회의원 정원 축소라든지 기초단체 선거에서의 정당 공천제 폐지 등의 제안이 대표적이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가진 권한을 제한하고 빼앗으면 '새정치'이고 '혁신'이라는 생각은 유치한 발상이다. 외국의 사례라든지 실질적인 효율성을 따졌을 때 우리나라의 인구수 대비 적정 국회의원 수는 몇 명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는 것이 오히려 남아 있는 국회의원들의 권한을 집중 강화시킬 가능성 등에 대한 고민, 기초 의원에 대한 정당의 공천이 지역 토호들이 아무런 견제 없이 기초 의원직을 해먹었던 과거에 비해 책임 정치적 측면에서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반새누리당 성향의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누리당을 이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새누리당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야권 정당인 새정치 민주연합이 대오를 정비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총선에 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 새정치 민주연합은 계파 갈등과 공천권 다툼으로 정신이 없다. 국민들이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빨리 내부 갈등을 수습하고 공동의 적과의 싸움을 준비했으면 하는데, 끝도 없이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있다는 것. 한심한 것은 안철수가 이 아귀 다툼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명확히 보인다. 당권을 장악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에 새정치 민주연합의 대권 후보로 자신이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당권은 문재인에게 있고, 심지어 대선 후보 선호도조차도 자신이 문재인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그게 초조해서일까. 총선 승리를 위한 협조와 단결보다는 당 내부에서의 대결과 대립에 주력하고 있다. 자신의 좁은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그 동기를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게 야당 전체로 보면 지극히 마이너스인 행동이라는 점이다.
새정치 민주연합에서 안철수에게 동조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라. 세칭 새정치 민주연합의 비주류들. 호남권의 의원들. 이들이 과연 '새정치'나 '혁신'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자들일까. 안철수가 말한 바 있는 상위 20%에 해당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안철수도 그렇게는 생각 안 할 것이다. 다만 당장 문재인에 대항하는 세를 불리는 것이 급하니 호남 쪽의 불만 세력들을 아우르고 있을 뿐. 결국 이 문제는 안철수가 입에 올리는 혁신이나 새정치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 싸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안철수는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혁신이고 새정치'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안철수도 결국 정치인들이 흔히 걸리는, '과대망상'과 '독선'이라는 심마에 잡아먹혔다는 이야기니까.
지나온 인생을 살펴보면 안철수가 모범적 시민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삶의 궤적을 걸어 왔다는 것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해, 사회 구조에 대해 고민을 갖춘 '준비된 정치인'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바람직한 인격을 가진 자라고 하여도 반드시 바람직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탁월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준비 되지 않은 상태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능력에 비해 너무 과도한 기대를 등에 업었다. 그것이 안철수에게 조급증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것은 욕심 없는 통큰 양보라고 칭송받았지만 달리 보면 곧바로 대통령직에 도전하기 위한 서두름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 신인이 데뷔 후 몇 달만에 대통령이 되는 것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직에 도전하더라도 차기 대선을 대비한 입지 확보라는 경로를 걷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아직 신인인 이상 여유를 가지고 단일화 협상을 하는 게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자신으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단일화를 통한 정권 창출 이후 정치적인 훈련을 쌓고 세를 키워나가 자신이 주도하는 정당의 지원을 받으며 당당하게 대선에 재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그러지 않았다. 일단 도래한 기회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문재인과의 단일화 과정은 상처 투성이의 싸움이 되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모두 상실했을 뿐 아니라, 최후 단계에서는 악화되어 가는 여론 속에서 주식 손절하듯 대통령 후보직을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는 이것을 '양보'라고 주장하며 차기 대권 도전의 자산으로 삼으려 한듯 하지만, 그나마 문재인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바람이 상황이 꼬이고 말았다. 5년을 더 기다리기로 하고 돌을 던진 것인데, 10년을 더 기다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또 다른 조급증이 생긴 셈이다.
현재의 행보로 보면 안철수는 10년을 기다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급함에 쫓기는 그의 행보가 기다림을 5년 단축시켜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연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나치게 조급해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