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가 신당을 만든다고 한다. 더불어 안철수 개인에 대한 인기와 그가 만들겠다는 신당에 대한 예상 지지도 역시 크게 상승하였다. 나가면 바로 자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혐오와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국민들의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안철수가 탈당에 이르는 과정을 다시 복기해 보자. 처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당내 혁신의 문제였다. 문재인은 당내 혁신을 당면 과제로 제시하며 안철수에게 혁신위원장 직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이에 의견 수렴을 거쳐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혁신위원장 직을 맡았고 몇 달에 걸쳐 혁신안을 만들어 제출하였다. 그런데 안철수가 돌연 이 혁신안은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혁신안을 제시하고, 이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일련의 과정은 무척 괴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안철수가 당내 혁신을 그토록 중시했다면 처음부터 혁신위원장 직을 수용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김상곤이 제출한 혁신안은 당의 공적 절차를 거쳐 내놓은 결과물이므로, 권위의 측면에서 안철수가 사적으로 제시한 혁신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적 절차를 거쳐 몇 달 간에 걸쳐 제시된 혁신안을 개인이 제시한 혁신안이 뒤집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상식적이지 않다. 안철수가 자신 나름의 혁신안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혁신위에 참가하여 공적 논의와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왜 혁신위원장 직을 거절했을까. 자신이 만든 혁신안을 문재인이 수용하여 당내 혁신을 주도하고, 이것이 문재인의 성과가 되는 것이 싫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안철수에게 있어서 문재인은 대권 경쟁자이므로 가능하면 상대가 실수를 하고 무능을 드러내어 스스로 거꾸러지는 것이 좋다. 그런데 오히려 문재인이 당을 혁신하는 것을 도와 준다? 안철수 입장에서는 남 좋은 일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만약 안철수가 혁신위원장이 되어 만든 혁신안을 당대표인 문재인이 수용하여 집행했다면 당의 리더십은 공고하게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당 내에서 가장 강력하게 대중 지지를 얻고 있는 대권 후보 두 사람의 협력 체제를 누가 무슨 수로 흔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당대표인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안철수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는 오히려 당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는 게 안철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철수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안철수가 새정치 민주연합이라는 당의 혁신이나 개선보다 본인의 입지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사후공(先私後公)'이라고나 할까. 안철수는 '정당'이라는 것을 본인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볼 뿐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정치 시스템의 요소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당 대표까지 지냈건만 정당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가 신당을 세워 총선에 참여한다면 필연적으로 야권 분열의 효과가 발생한다. 탈당 이후의 안철수가 국민들로부터 생각 이상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으로 제1 야당인 새정치 민주연합의 득표력을 갉아낼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안철수 신당의 존재가 새누리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세를 조성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관화하다. 그렇지만 안철수는 이제 총선에서 새누당에게 지는 것은 상관 없다는 식이다. 총선에서 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혁신 전대를 제시하더니, 그것이 수용되지 않자 탈당을 하고 이제 총선에서 지는 것은 상관 없다고 구는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완벽한 모순이다.
안철수는 혹시라도 새정치 민주연합이 총선에서 선전할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 새정치 민주연합이 총선에서 선전한다면 문재인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그의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 역시 강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대권을 노리는 안철수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어처구니 없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당이 잘 되면 안철수의 목표인 대선 후보가 멀어지게 되므로, 결국 본인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는 당이 망하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에 안철수는 아예 총선 전에 당대표를 교체하려고 하였다. 문재인에게 기회 자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하였던 혁신 전대 제안의 본질은 문재인을 총선 전에 끌어내리는 것이었고, 이는 문재인 입장에서 당연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였다. 결국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안철수는 탈당을 감행한다.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핵심 원인은 대통령직에 대한 안철수의 열망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직에 대한 열망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철수가 새정치 민주연합이라는 정당 안에 있을 때 보였던 행태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안철수가 지속적으로 정당의 시스템과 절차, 룰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 말이다.
여론 조사를 통해 보이는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이미 다 꺼진 줄 알았던 안철수 현상이 여전히 불씨를 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정치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나온 바 있다. 정치 혐오는 기존 정치에 대한 파괴와 소멸의 욕구를 동반하고 있다. 하지만 파괴된 기존 정치를 어떤 정치가 대신할 것인가. 기존 정치의 파괴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를 대신할 새로운 정치의 구체적인 상이 있어야 한다. '낡은 정치'가 무너진 자리에 다시 '낡은 정치'가 들어선다면 파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새로운 정치의 구체적인 상을 대중들이 가다듬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이를 대신해 줄 '초인'을 기대한다. '낡은 정치'를 일소하고 '새정치'를 구현해 줄 초인. 안철수의 지지자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초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안철수가 가지고 있다는 '새정치'의 구체적인 안이 무엇인지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밝혀진 바 없다.
무엇보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새정치'를 열망하며 초인을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독하게 낡은 정치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바람직한 정치는 개인의 독단과 선도가 아니라, 다수의 협력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구현이다. 우리의 모든 고통을 일거에 해결해 줄 초인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토론, 협력을 통해 '올바른 시스템'과 '룰'을 하나씩 구축해 가는 것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시작 이후 줄곳 시스템, 절차, 룰을 경시하며 자신의 예외성과 특별함을 과시하고 있는 안철수를 과연 새정치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