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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트76

서울신문 칼럼,'가야 특별전과 쇼비니즘적 음모론'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304033003&wlog_tag3=naver [기고] 가야 특별전과 쇼비니즘적 음모론/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 전공 교수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가야본성-칼(劒)과 현(絃)’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국 31개 기관에 흩어져 있던 가야의 대표적인 유물들을 모아 구성한 특별 기획전이었다. 일각에서는 전시회의 기획이나 콘셉트에 대해 이견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가야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 www.seoul.co.kr 2020. 3. 4.
사실은 1940년에 발생한 오성취루 현상 http://blog.naver.com/skepticmgz/221362057521 유사역사, 천문학을 이용하다 ​​​1980년대 임승국의 《한단고기桓檀古記》a가 출판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유사역사학은 광범위... blog.naver.com 2018년 9월 "Korea Skeptic"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이다. 당시 이문영 선생, 안정준 선생과 함께 3편의 기획 글을 실었는데, 여기서는 편의상 내가 주로 사용하는 '사이비 역사학' 대신 '유사 역사학'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였다. 어차피 '슈도 히스토리(pseudo-history)의 번역어이므로, 어떤 용어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나는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용어가 본질을 더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여 이 용어를 선호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유사 역사학'이라.. 2019. 8. 14.
평양 보성리 벽화고분의 축조 시기는 4세기 말 2017년에 평양 지역에서 보성리 벽화고분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 고분의 축조 시기를 3세기 전반이라 발표하였고,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한 바 있다. 그러자 사이비 역사학 측에서는 3세기 전반에 이미 평양 지역이 고구려 영역이었음이 증명되었다며, 이것으로 '낙랑군 재평양설'이 부정되었다며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나는 이 무덤을 3세기 전반으로 보는 것은 북한 학계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고분의 내용이나 형태를 보았을 때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남긴 바 있다. 그런데 올해 7월, 학술지 "고구려발해연구"64집에 이 보성리 고분에 대한 상세한 연구 논문이 실렸다. 논문 저자는 현재 연변대학에 있는 조우연이며, 논문의 제목은 '.. 2019. 8. 13.
발굴 전 나주 송제리 고분에 들어가 보았다 "경향신문", 2019. 7. 25. '마한 심장부의 생뚱맞은 백제고분 주인공은 성왕이 '담로'에 파견한 왕족?'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250915001&code=960100 사실 나는 발굴 전에 나주 송제리 고분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이 고분이 있는 마을이 내 외가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였는데, 서울에서 고대사를 전공한다는 조카가 내려오니 마을 어귀에 옛날 무덤이 있다고 한번 보고 가라는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가보니 무덤 위쪽에 구멍이 나 있는 형태였고, 그 구멍을 이용해 석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도굴 구멍이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그냥 텅 .. 2019.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