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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경희대 총여학생회 논란에 대한 단상

by kirang 2007. 2. 23.

  나는 애초에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이 사건을 대할 때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고 여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뒤늦게 밝혀진 당시 정황을 알게 된 후에는 총여학생회가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폭행 상황을 녹음했다는 테잎과 피해자 치마에 묻어 있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정액. 이 정도 증거물이 확보되었다는 정보를 접했다면 100에 99명은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가 유죄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녹음 테잎을 짜집기해 재판부를 속이고 누군가를 무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짜집기는 들통났다). 황우석 교수 사건과 비교한다면, 피디수첩이 '황우석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밝히는 방송을 하겠다고 예고했을 때 100에 99명은 피디수첩이이성을 잃고 위험한 시도를 한다고 생각했다. 명망 있는 과학자가 전세계를 상대로 그런 터무니 없는 사기를 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위의 상식들은 모두 깨어졌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처럼 상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나는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교수가 유죄임을 확신하고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해 납득을 한다. 지금은 상황이 반전되었고, 아마도 교수는 무죄로 판결이 날 것 같지만,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상식에 부합하고 명명백백해 보였을 '조작된 증거들'을 감안하면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취했던 행동이 섵부른 짓이었다고 일방적으로 매도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현재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분명한 사과나 입장표명을 미루고 있는 것도 납득한다. 그동안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한 바가 있기 때문에 반전된 상황을 쉽사리 인정하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굳게 믿고 있던 '상식이 눈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 되도록 신중한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대로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들의 상식을 과신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를 비난했다가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앞서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재판 결과가 확실히 나올 때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보류하는 것은 타당성을 가진다. 앞으로 재판정에서 교수가 무죄임이 밝혀지고 교수를 고소한 여인이 무고를 한 것이 확정된다면, 그때 가서 진솔한 태도로 사과를 하는 것이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희대 총여학생회, 더 나아가 여성운동 전반에 대한 비난과 노골적인 혐오의 감정 표출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 사건의 정황에 대한 차분하고 합리적인 접근에 앞서 평소 곱게 보지 않았던 단체에 대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쪼록 이번 사건이 여성운동의 실천과 행동전술에 있어서 좀 더 현명하고 섬세한 방법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