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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by kirang 2014. 10. 12.



2004년 개봉한 유하 감독의 영화이다. 

내게 있어 권상우는 연기도 못하고 매력도 없는 이름만 배우인 연예인일 뿐이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만큼은 진짜 배우로서 연기를 했다고 평해 주고 싶다권상우가 표현한 구부정하고 자신없는 표정의 현수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 들어가 이야기를 이끈다. 연기에 자신이 없으니 자신 없어 보이는 연기를 잘하는 것일까. 여하튼 배우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배우를 어떻게 지도하고 활용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가장 위태로운 연기를 펼친 사람은 권상우가 아닌 한가인이었는데 뭐, 워낙 빛나는 용모니까 용서해 주도록 하자. 외모만으로 해야할 역할은 다 했다.

영화는 감독의 출신 학교인 상문고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소문을 들어 알던 바로 그 학교다. 상문고를 모델로 한 또 다른 영화로 "두사부일체"가 있는데, "두사부일체"와 "말죽거리 잔혹사"의 공통점이라면 아이러니컬 하게도 배움의 전당이라는 학교에서 폭력과 욕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전자의 그것이 상스럽고 천박한 웃음을 위한 몸부림이라면, 후자의 그것은 현실의 위선을 고발하고 영화의 설득력을 살려 주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라 할 수 있다. 같은 도구를 사용했음에도 결과는 이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화의 톤을 일관적으로 유지하지는 못했다. 우식이 학교를 떠나는 장면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기존에 쌓아 놓은 리얼리티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노골적인 환타지를 펼치기 시작한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약골 소년이 피나는 훈련을 쌓아 급기야 옥상 위에서 학교의 캡짱 및 그 무리와 1:8 대결에서 이겨 버린다니! 옥상 싸움의 액션은 일반 액션 영화의 기법을 사용치 않은 막싸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앞부분에서 공을 들여 쌓아 놓은 섬세한 현실감에 손상을 주는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굳이 날을 세워 비판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건 이 장면이 처절한 한풀이로 느껴지는 탓이다. 야만스러운 교칙과 폭력적인 교사들에게  억압을 강요당하고, 짐승의 냄새가 물씬 나는 남학생들 사이의 서열 싸움에 휘둘려 상처받은 소심한 장삼이사들의 한풀이 말이다. 비록 이 장면이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할 지라도 한편으로는 일종의 제의처럼 엄숙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다만 아쉬웠던 건 학교를 뒤집어 엎고 떠난 현수의 뒷이야기다. 없어도 될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다. 우식의 뒷이야기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은주의 뒷이야기도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편이 나았을 성 싶고, 이소룡이 성룡으로 대체되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성장의 상징성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의도를 읽고 아, 그랬구나 싶기는 했지만, 딱히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 

전작인 "결혼은 미친짓이다"에 비하면 도발성은 다소 감소했지만, 그래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