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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나꼼수 '비키니 사건', 혹은 '코피 사건'

by kirang 2012. 2. 9.

좀 가라앉기는 했지만 요 며칠간 인터넷을 가장 소란스럽게 한 사건인 터라, 그냥 넘어가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해 기록해 두기로 한다.


1. 나꼼수 여성 팬이 비키니를 입고 가슴 쪽에 정봉주의 석방을 응원하는 문구를 적어서 찍은 사진을 공개한 건에 대해서.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낼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성인의 자율적 결정이라면 존중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도 있을 수 있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다른 여성들에게 불쾌함을 주고 자존감에 상처를 준 잘못된 행동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가능하다. 자발적이라고는 해도 결국은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소비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역시 지켜져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점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간 논의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해당 여성이 잘못했다고 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2. 사진이 등장하기 전후의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 최근의 성공에 도취되어 실언을 한 부분이 있다. 성희롱을 비롯한 대부분의 말실수는 분위기 파악을 정확히 못하고, 농담의 허용선을 착각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경박하고 까불거리는 것은 괜찮다. 그건 유쾌함으로 보아줄 수 있다. 하지만 저질스러운 것은 곤란하다. 사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도 위태위태한 발언들이 몇 번 있었다. 김용민의 되풀이되는 'O까' 발언이라든지...... 애초에 성적 농담은 대상이 불특정한 상태에서는 하는 게 아니다. 성적 농담이 비윤리적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용될 수 있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으면 농담 자체가 망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소화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문제였는데, 분위기에 취해 통제가 안 된 것 같다. 

당사자들로서는 나름대로 억울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다.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얼른 사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 본인의 억울함보다는 기분이 상한 상대방 쪽에 미안함을 느끼는 게 도리에도 맞다.


3. 김어준의 '생물학적 완성도' 발언. 이 발언으로 욕을 먹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진다. 진중권은 우생학까지 언급하며 비판했는데, 이건 지나친 해석이다. 말을 활자화할 때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동일한 문장일 경우에도 말을 할 때에는 엑센트나 속도의 조절을 통해 전혀 다른 뉘앙스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그대로 따 활자화하면, 본래의 뉘앙스가 파괴되고 진의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김어준이 '생물학적 완성도'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맥락을 보았을 때 오히려 '가슴'이나 '몸매'같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피하고, 위트 있게 둘러서 표현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대실패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김어준의 발언에 대해서는 선의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4. 승승장구했던 나꼼수가 이번 일로 적잖이 타격이 되었을 것 같다. 이제 옛날처럼 경계심을 다 풀고 낄낄거리며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나꼼수의 진짜 위기는 그보다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우선 컨텐츠가 바닥이 난 것 같다는 점이다. 최근 한두 달간 당최 참신한 소스가 없다. 둘째는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김어준이 노무현에서 '노무현이 아닌 모든 것'인 이명박으로의 정권교체, 이명박에서 '이명박이 아닌 모든 것'을 갖춘 사람으로의 정권교체라는 흐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탁월한 해석이다. 실제로 대중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트렌드를 따라 몰려 다닌다. 그런데 이는 나꼼수에도  적용된다. '나는 가수다'를 눈물 흘려 가며 시청하던 이들이 슬슬 시들해하듯, 나꼼수도  시들해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차피 시한부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가카'의 임기는 여전히 1년 가까이 남아 있다. 아직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긴장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