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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by kirang 2009.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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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2004년 영화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한국어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로맨스물의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으로, 한국어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다.이 영화의 실제 내용은 로맨스물과 거리가 멀다.

  중년의 영화배우인 밥 해리스는 CF촬영차 일본에 왔으나 말과 문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극심한 고독을 느낀다. 그 고독은 단순히 낯선 환경에 놓여져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이미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아내, 자식과의 겉도는 관계에서 느껴왔던 중년의 고독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환경을 만나 극대화된 것이다.

  한편 20대 초반의, 결혼한지 2년밖에 안된 샬롯 역시 남편의 사진촬영 작업 때문에 일본에 왔다가 해리스와 비슷한 상황에 빠진다. 남편은 언제나 일 때문에 바쁘고 간혹 샬롯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철학을 전공한 샬롯은 아직 뚜렷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해리스가 나름대로 사회적 성과를 이룬 이후 허탈함으로 고독을 느낄 때, 샬롯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고독을 느낀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던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이라 하기엔 둘의 태도가 미지근하며, 우정이라 하기엔 둘의 감정이 너무 절실하다. 둘은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깊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접근한다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각각 아내와 남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으로 맺어진 명백한 파트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고독에서 벗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배우자들이 그들을 고독의 심연으로 밀어넣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랑이나 결혼도 고독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나의 고독을 달래 주는 것은 타인의 고독뿐이라는 이야기일까.

  영화는 뚜렷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건조한 느낌으로 두 사람의 행적을 쫒아 도쿄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빠져 있는 숨막히는 미로,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는 서양인 커플의 모습은 훌륭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고독을 느끼는 사람, 소통의 부재에 숨막힘을 느끼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 덧붙임 :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보면 불쾌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해리스와 샬롯에게 일본이라는곳은 단순히 말이 안 통하는 공간을 넘어서 초현실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공간으로 묘사되곤 한다.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연출이라 생각은 되지만, 서구인의 편견이 깔린 일본 문화 비하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