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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by kirang 2014. 8. 21.



2014년 개봉한 이석훈 감독의 영화이다.

영리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다. 고래가 국새를 삼킨 거야 영화적 상상력이라 치더라도, 정도전 등이 이성계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겨 사단을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억지스럽다. 국새를 찾고자 하는 해적이나 산적의 동기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래를 안 잡아오면 죄없는 백성들을 죽이겠다는 관군의 협박에 굴복하는 해적이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중간에 각본을 수정한 것인지 산적들이 고래 사냥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고래가 삼킨 보물인지 국새인지도 왔다갔다 한다.

손예진이 연기하는 여월의 경우는 재미 없고 딱딱한 인물이다.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러운 남자 주인공 장사정과 대비되는 효과를 노린 듯하나 그렇다고 해도 인물 자체에 별다른 매력이 안 보인다는 것은 문제다. 이경영이 연기하는 소마나 김태우가 연기하는 모흥갑은 악역임에도 그다지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지루하다. 특히 이경영이 마지막 순간에 던지는 최후의 몇 마디 대사는 캐릭터의 일관성을 증발시켜버린다는 점에서 최악이다.

그래도 몇 가지 장점을 꼽자면 성공적인 유머가 몇 군데 있다는 점이다. 주로 유해진이 개입되어 있는 장면들인데, 특유의 익살스러운 개인기로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들을 성실히 이끌어 나가며 웃음을 보장한다. 남자 주인공인 김남길의 연기력도 괜찮다. 발성이 생각 이상으로 안정적이고, 코믹한 연기나 액션 연기도 제법 잘 소화한다. 특수효과를 이용한 고래의 현실감도 뛰어나다. 거대하고 육중한 몸 크기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야기를 위해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 애초에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비싼 돈 들여 만든 멋있는 고래를 어떻게든 보여 주어야 한다에 있었고, 나머지 내용은 이를 위해 적당히 엮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액션이지만, 초반부와 끝부분에서는 장사정의 입을 빌어 이성계로 대변되는 권력자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직설적으로 노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내용과 논리는 조악한 수준에 머문다. 오락 영화라면 그냥 잘하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을 어설프게 밑천을 드러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