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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만년필 "파카 듀오폴드 체크블루"

by kirang 2015. 6. 27.

  만년필 브랜드 중 가장 유명한 두 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몽블랑과 파카일 것이다. 몽블랑의 상징이 별을 연상케 하는 흰 만년설이라면, 파카의 상징은 '성공'을 의미하는 화살이다. 만년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파카 제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화살 모양의 클립은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화살 모양 클립이 정말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두 회사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몽블랑은 철저한 고가 정책을 펼치고 있어, 고급스러운 제품의 이미지를 고수하는 회사이다. 반면 파카는 저가에서 고가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어 친근하고 실용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실 어지간한 집 책상 서랍 구석에는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중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저렴한 파카 만년필 한 자루 정도는 뒹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년필의 본령이 필기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의 손에 쥐어져 수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는 파카야말로 몽블랑보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브랜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렴하고 대중적인 만년필의 대명사인 파카라고 해서 저가의 만년필에만 강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파카는 촘촘한 가격대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고, 그 꼭대기에는 파카의 자존심 듀오폴드가 있다. 듀오폴드는 파카의 플래그십 모델로, 파카에서 내놓는 한정판 만년필들은 대개 이 듀오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격대 역시 몽블랑 만년필에 뒤지지 않는다.

  듀오폴드는 크기에 따라 센테니얼, 인터내셔널, 미니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센테니얼이 가장 크고 굵으며, 인터내셔널은 그 중간, 미니는 가장 짧고 작은 펜이다. 내가 사용한 것은 이중 인터내셔널이므로, 이 리뷰 역시 인터내셔널을 기준으로 한다.

  우선 필기감. 듀오폴드의 펜촉은 대단히 단단하다. 이는 탄성이 적다는 이야기이고, 글씨를 쓸 때 굵기 조절의 폭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자연히 글씨를 쓸 때 기교를 부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얼핏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글씨 굵기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직하면서도 신뢰가 가고 안정적인 필기감, 듀오폴드는 그런 펜이다.

  펜 자체의 길이는 적당한 편이다. 다만 캡을 뒤에 꽂으면 지나치게 길어져 밸런스가 무너진다. 펠리칸 만년필처럼 배럴이 캡에 깊숙히 꽂히는 것이 아니라 배럴의 윗 부분 일부만 꽂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캡을 뒤에 꽂지 않고 그냥 쓰는 것이 적절하다. 캡과 배럴을 결합하는 방식은 나사선 방식이다. 대부분의 파카 만년필의 결합 방식이 편의성을 중시한 푸쉬캡 방식임을 감안하면, 고급스러움을 부여한 듀오폴드의 특징이 보이는 캡 결합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잉크 주입은 펜촉과 배럴을 분리한 후 펜촉 끝을 잉크병에 담그고 손잡이를 돌려 빨아올리는 일반적인 컨버터 방식이다. 몽블랑 같은 고급 만년필에서 흔히 보이는 피스톤 필러 방식은 아니지만, 잉크 주입 방식이야 어느 한 쪽의 우위를 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잉크 주입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단점은 잉크의 보존 문제이다. 이건 듀오폴드 뿐 아니라 파카 만년필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점인데, 펜에 주입된 잉크가 다른 브랜드의 만년필보다 훨씬 빨리 마르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파카 펜의 구조상 캡이 외부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필기량이 꾸준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수시로 잉크를 주입할 테니 큰 문제가 아니라 하겠으나, 필기량이 많지 않고 잉크 주입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며칠만에 한 번 펜을 들었는데 잉크가 이미 다 말라 있다면 새로 잉크를 주입하거나 세척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발생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점 때문에 나는 파카 만년필의 실사용은 포기하게 되었다.

  만년필 애호가인 경우 여러 개의 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펜 한 자루당 필기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면 듀오폴드를 비롯한 파카 만년필들은 하나의 펜만으로 부지런히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필기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