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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과 잡담

박근혜의 대통령직 파면에 즈음한 소고

by kirang 2017. 3. 13.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헌재의 탄핵 판결은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는데, 당시 나는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이동중이었기 때문에 스마트 폰을 통해 상황을 지켜 보아야 했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주문을 읽을 때 라이브 동영상에 버퍼링이 걸리며 남들보다 더 마음을 졸이는 경험을 하였다.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에 환호하는 사람과 탄식하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워 의사 표현을 한 국민들과 이를 수용하여 탄핵을 의결한 국회, 그리고 헌재의 판결까지 이어진 프로세스는 차후 소중한 우리나라의 자산이 될 것으로 본다. 최고 권력자를 법적 절차에 따라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권력을 회수한 것은 우리나라 주권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보여 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에 비상식적이고 극우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수치가 15%가량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점이다. 기존의 선거들과 여론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된 새누리당의 기본 지지율은 30~40% 가량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적지 않은 수가 이탈하였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이들은 15% 남짓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15%의 열성 지지층은 설득이 불가능한 이들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어떤 증거를 갖다 대도 신뢰하지 않으며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들이다. 신앙인이라고 표현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그동안 연성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과 뭉뚱그려져 규모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던 핵심 극우파의 규모가 명징해졌다는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사건이 터지고 한동안 위축되어 있던 새누리 잔당(자칭 자유한국당이라지만 나는 그냥 새누리 잔당이라 부르련다)은 이제 배를 째라는 막무가내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뻔뻔해지기로 한 모양이다. 이는 정치인에 앞서 지지층의 문제이다. 정치인은 표를 따라 부나방처럼 움직이는 자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자신에게 표를 던져 줄 사람들의 입맛대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김진태를 비롯한 일군의 새누리 잔당 국회의원들이 망언을 늘어놓으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있지만, 이는 한편으로 새누리 잔당의 지지층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지층이 정치인의 망언에 이성적이고 냉정한 반응을 보인다면 감히 저럴 수는 없다. 결국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을 리드한다기 보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정치인들을 저런 존재로 빚어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문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나는 김문수가 경기도를 자신의 핵심 정치 기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저 정도의 막 나가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권의 꿈을 위하여 경기도를 버리고 대구를 새로운 베이스 캠프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어필해야 하는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파는 오랫동안 정치 권력의 주류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폭력성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은폐하여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정치적 소수 집단으로 전락하였다. 이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그동안의 '법치 운운'하던 태도를 뒤집고, 위법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실체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어설프게 관용이니, 통합이니 하는 말로 이들을 보듬으려 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은 당연히 지켜 주어야 하겠지만, '계엄령을 선포하라'느니, '군대가 들고 일어서야 한다'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파시즘 추종 세력들에게는 단호하게 민주 공화국의 기강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는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과 권리 보호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아무런 의사 표시 없이 청와대에 머물며 시간을 뭉개고 있던 박근혜는 결국 3월 12일 저녁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던 것은 이때 자동차에서 내리는 박근혜의 얼굴이었다. 혹시라도 탄핵 인용에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생각이라도 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 민망해질 만큼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싱글벙글이었다. 도대체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저런 백치같은 웃음이 가능하단 말인가. 혹시 이 사람은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고 청와대에서 쫓겨난 지금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건가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라도 탄핵 인용 판결이 내려지고 난 후 격렬하게 시위를 하던 그의 지지자 몇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웃음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박근혜의 웃음을 보며 그가 또다른 의미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다. 앞으로 그가 검찰 조사를 위해 포토라인에 설 때 지을 표정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