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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완벽한 타인"

by kirang 2018. 11. 4.

  2018년 10월 개봉한 이재규 감독의 영화이다.

한 장소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연극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이다. 여러 등장 인물이 끊임 없이 수다를 주고 받는 가운데 비밀이 하나씩 폭로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미타니 코키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 난 미타니 코키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무척 반갑고 즐거웠다.

"완벽한 타인"의 유머는 타율이 꽤 높은 편이다. 빵빵 터지는 부분이 많고 재미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집 인테리어와 배우들의 출연료 외에는 크게 돈을 들이지 않았을 테고, 입소문도 좋은 듯하니 손익 분기점은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장르가 블래 코미디이므로, 단순히 웃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씁쓸함이 동반된다. 다만 영화를 다 관람한 후 남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장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의 일관성이나 이야기의 톤 조절에 있어서 다소 부조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스포일러 주의)

우선 이 영화에서 이서진이 맡은 캐릭터는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당연히 등장할 소재라고는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인간이다. 아무리 블랙 코미디라고 해도 등장 인물을 이렇게까지 혐오스럽게 만들어버리면 개운하게 웃을 수가 없다. 가소롭거나 얄미운 정도라면 모를까, 환멸과 함께 사람이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면 코미디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적절할까 싶다. 바람기 많으면서도 학력이 떨어져 무식한 캐릭터와 배우 이서진이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배우 본인은 오히려 자기의 기존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이 역을 맡았을 수도 있겠지만.

유해진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책임지고 있고, 실제로 잘 해냈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다. 밤 10시면 이상한 사진을 보내는 내연녀와의 관계는 웃기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갖다 붙인 설정으로 느껴질 뿐, 그의 캐릭터와 잘 융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영화 막바지에 부인 염정화와의 갑작스러운 관계 개선 모습도 의아하다.

동성애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데 그게 약간 선을 넘은 듯한 느낌도 든다. 물론 영화 내에서 대사를 통해 몇 개의 안전 장치를 두고 있고, 심지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정색하고 비판하는 내용도 들어간다. 그런데 그게 훈계에 가까운 방식이어서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 앞에서 경박하게 웃음의 소재로 써 먹은 뒤 비판이 나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좀더 섬세하게 다룰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조진웅의 캐릭터는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데, 친구들 때문에 왠지 도맷금으로 욕을 먹는 감이 있다. 그에게도 비밀이 하나 있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 가지고 있는 비윤리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그의 비밀은 이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아서 사족에 가깝다. 유독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발언을 많이 하는데, 이 역시 훈계적이고 교훈을 제시하는 형태라서 교과서의 글을 보는 듯한 작위성이 있다.

"완벽한 타인"은 순간순간 재미있는 대사와 장면들을 잘 뽑아낸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다만 앞에서의 반전이 뒤에 발생할 반전의 밑밥이 된다든지, 등장 인물 간의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웃음이 터진다든지 하는 이런 영화 특유의 치밀하고 정교한 설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한 코미디 장르치고는 지나치게 심각한 대사, 폭력적인 장면이 섞여 있는 등 전체적으로 톤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다. 실컷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후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도 다소 김이 빠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이런 유형의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몸값 비싼 스타 배우들, 신파물, 특수 효과에만 의존하는 뻔하디 뻔한 영화들보다 아이디어와 연기력, 이야기로 승부를 거는 영화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