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70 여행 "태국 방콕 여행"- 1. 공항 택시, 메트로 폴리탄 호텔 2014년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3박 4일간 태국 방콕 여행을 하였다. 방콕이 초행인 다른 여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긴다. 내가 이용했던 항공기는 이스타 항공이었다. 1인당 왕복 40만 원 정도의 저렴한 티켓을 구매하였는데, 승무원들이야 언제나 그렇듯 친절하였으나 5~6시간 날아가는 일정이었음에도 기내식은 제공되지 않았다. 딱 물 한 잔 나왔다. 애초에 저렴한 상품을 구입하였으니 딱히 불만을 표할 일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만 타도 주스 한 잔은 주던데 해외 여행에 물 한 잔이라니 약간은 충격이었다. 배가 고픈 사람은 3,000원을 내고 컵라면을 사먹을 수 있으며, 담요 역시 돈 내고 구입해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이스타 항공을 이용해 방.. 2015. 8. 6. 위만, '한국사 최초'의 왕위 찬탈자 위만(魏滿, 衛滿)은 중국에서 고조선(古朝鮮)으로 망명하여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위만은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조선이라는 국명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그와 그의 후손들이 왕위에 있었던 시기를 '위만 조선'이라고 별도로 지칭한다.『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을 왕검조선이라고 부기하였는데, 원래의 국명인 ‘조선’ 앞에 ‘고(古)’를 붙인 것은 위만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때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라는 나라는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다. 위만의 이름 위만(魏滿, 衛滿)은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위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사서인 『사기』인데, 거기에는 단지 ‘조선왕(朝鮮王) 만(滿)’이라고만 칭하고.. 2015. 7. 27. 병자호란 쌍령 전투는 정말 300대 4만이 싸워 진 전투인가(2)-전투의 전개 쌍령에서의 싸움 경상도 근왕군은 경상도 관찰사 심연(沈演)의 지휘 아래 조직되었다. 그는 경상도 좌병마절도사 허완(許完)과 경상도 우병마절도사 민영(閔栐)을 선봉으로 삼아 앞서 진군하게 하고 자신은 후방 병력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허완과 민영이 이끄는 경상도 근왕군은 1월 2일 남한산성 동남쪽 40리 지점인 무갑산과 등리봉이 마주보이는 쌍령에 도착하였다. 허완의 좌병사군은 남쪽에, 민영의 우병사군은 북쪽에 진을 쳤다고 하므로 쌍령 고개의 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누어 진영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과 쌍령의 위치 진을 치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의견 충돌이 발생하였다. 안동 영장(安東營將) 선세강(宣世綱)이 진영 위치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산 위로 진을 옮기자고 세 번이나 요청하였으나 허완에게 .. 2015. 7. 19. 병자호란 쌍령 전투는 정말 300대 4만이 싸워 진 전투인가(1)-배경 들어가며 쌍령 전투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전투이다. 병자호란이 왕이 직접 나가 무릎을 꿇은 치욕적인 패배였고, 그 패배한 전쟁의 패배한 전투라면 그다지 기억에서 호출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할 것이다. 그랬던 쌍령 전투가 최근에는 임진왜란기의 칠천량 전투, 6.25전쟁기의 현리 전투와 함께 '한국사 3대 패전'이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을 받으며 새삼 주목받는 듯하다. 상대적으로 인지도와 관심이 떨어지는 쌍령 전투가 당당하게 '한국사 3대 패전'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전투에 참여한 병력의 차이 때문이다. 쌍령 전투는 청나라 군대 300명 대 조선군 4만 명이 싸워서 조선군이 전멸을 당한 전투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이라고 한다면 정말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과연 이 내용이 .. 2015. 7. 19.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6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