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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랑의 백지 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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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랑의 백지 채우기
조선 시대에도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백두산 장백산 논쟁과 관련해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하고자 자료들을 좀 찾아 보았다. 그 결과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례들을 찾아냈는데 다음과 같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0권, 세조 1○ 양성지가 상소하여 여러 조항의 정책을 진달하였다. 그 내용은, 1.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는 일, 2. 한성을 상경(上京)으로, 개성(開城)을 중경(中京)으로, 경주(慶州)를 동경(東京)으로, 전주(全州)를 남경(南京)으로, 평양(平壤)을 서경(西京)으로, 함흥(咸興)을 북경(北京)으로 정하는 일, 3. 삼각산(三角山)을 중악(中嶽)으로, 금강산(金剛山)을 동악(東嶽)으로, 구월산(九月山)을 서악(西嶽)으로, 지리산(智異山)을 남악(南嶽)으로, 장백산(長白山)을 북악(北嶽)으..
2014.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