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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드라마 "부활"

by kirang 200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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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은 2005년 여름 KBS에서 방영한 24회짜리 드라마이다.  엄태웅과 한지민이 주인공 역을 맡았고, 고주원과 소이현이 주조연급으로 뒷받침해 주는 역을 맡았다.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강혁(엄태웅 분)의 복수극, 또 하나는 유강혁과 서은하(한지민 분)와의 안타까운 사랑. 드라마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중반부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즉, 서스펜스 추리물로서의 성격과 비극적 멜로물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중 드라마의 재미와 장점이 극대화된 쪽은 복수극쪽으로,  "부활"의 백미는 전반부와 후반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비극적 멜로물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중반부는 이에 비해 다소 부진한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유강혁의 연적 역할을 해야 할 정진우(고주원 분)의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강혁이 죽은 줄 아는 서은하와 실제로는 살아 있으나 다른 사람인 척 하는 유강혁의 사이에 끼어들어 긴장 관계를 조성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정진우가 서은하와 약혼까지 가는 걸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방영 도중 정진우의 비중이 크게 수정되면서 그냥 서은하의 주변을 맴돌다 나가 떨어지는 심심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중반부의 멜로 라인은 크게 약화, 단순화되었다. 유강혁과 서은하가 우연히 마주친다, 외면한다, 각각 혼자 괴로워한다는 식의 장면이 과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때문에 중반부는 이야기 흐름이 다소 느슨해지는 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나리오 변경은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수 있다. 혹자는 고주원의 부족한 연기력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만약 시나리오 원안대로 서은하가 정진우에게 마음을 주고 넘어갔다면, 서은하라는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완전무결해 보이는 순수성에 훼손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다들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몇 년이 지난 후라면 모를까, 서은하는 불과 몇 달만에 유강혁을 잊고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구상단계에서의 작가의 계산착오일 수도 있고 여주인공 한지민이 작가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서은하의 이미지를 단단하게 구축해버린 탓일 수도 있겠다.

 

  후반부에서는 다시 긴박감 있는 복수극이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 후반에서 정말 좋았던 장면은 숨겨져 있던 악당이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자동차 창문이 쓱 열리면서 실루엣이 나타나는 순간의 박력은 대단했다.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내면서 목소리 톤이 바뀌는데, 단지 목소리 톤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그 사악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것 외에도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미리 이것 저것 암시와 복선, 단서들을 많이 깔아 놓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되며 앞에서 보았던 단서들을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활은 매우 좋은 드라마이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주조연을 막론하고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엄태웅의 힘있는 연기는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 더 이상 바랄게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연기를 해냈다. 여주인공 한지민의 경우는 주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혼자 걷거나 울거나 하면 되는 역으로, 엄태웅에 비해 연기의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그림이 나온다. 이건 연기력 이전에 하늘이 내려주신 비주얼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한지민은 자신의 외모를 잘 활용하여 역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젊은 주연급들 외에도 중년 연기자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드라마를 탄탄하게 해 준다. 김갑수(이태준 역), 기주봉(정상국 역), 이정길(강인철 역), 강신일(서재수 역), 김규철(최동찬 역) 등등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 적재적소에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였고, 단순한 조연이 아닌 시나리오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물들로서 보는 입장에서는 눈이 즐거울만큼 열연을 펼친다.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연기자는 고주원(정진우 역)과 고명환(김형사 역)인데, 고주원은 원래 준 주인공급의 비중있는 역이었으나 앞에서도 말했듯 시나리오의 수정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유명무실한 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고명환이 배역을 맡은 김형사는 내면의 복합적인 갈등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역인데, 고명환의 능력이 여기에 미치지 못해 아슬아슬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나마 후반부로 갈수록 연기가 안정되고, 주변에서 워낙 잘 받쳐주니까 그럭저럭 넘어갈만 하다. 

 

 "부활"은 작위적인 설정이 꽤 있는 드라마이다. 어떤 부분은 매끄럽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은 미처 다듬지 못하고 거칠게 노출되어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6회 유강혁이 유신혁으로 변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아무리 좋은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로 극복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을만큼 각본이 안 좋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안 좋은 부분으로, 이 장면만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크게 문제삼을 정도의  장면은 없다. 간혹 드러나는 단점들을 상쇄시킬만큼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힘이 넘치고 묵직하다. 복수의 대상은 물론 주체까지도 파멸로 끌어당기는 비극의 정서도 강렬하다. 일반 드라마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장중한 고전미를 품고 있다고 평가해 줄 수 있다.

  

  "부활"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인 후반부로 갈수록 지지부진해지는 단점을 넘어선 작품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시간에 쫒겨가며 날림으로 후반부를 만드느라 화룡점정을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상기하면, "부활"이 후반부까지도 초반부와 비슷한 밀도의 긴장감과 완성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은 마땅히 칭찬받을 일이다. 

 

* 덧붙임  

 "부활"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모델로 씌어진 작품이다. 따라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입하여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알 수 있다. 소설과 드라마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대입해 비교하며 어떤 식으로 변주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