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kirang 2011. 3.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고령인구의 증가와 소외 노인들에 대한 복지 문제를 다루는 영화인가 싶은 제목과 달리 이 영화의 장르는 엉뚱하게도 스릴러다. 그리고 배경 음악이 전혀 안 나온다. 특수 효과도 거의 보이지 않으며, 인물들은 느릿느릿 걸어다닌다. 그럼에도 스릴러물로서 매우 성공적이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가진 인상적인 킬러로,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며 쏘다니는 그의 존재감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스릴러물로서의 뛰어난 연출과 무관하게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녕, 안톤 쉬거라고 해. 내 친구 중에 레옹이라고 있는데 말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네, 이 영화에서 국민연금이나 노인 복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나?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세상살이의 부조리함에 대한 냉소와 탄식'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제대로 된 질서와 인과율이 존재하지 않는, 제멋대로 꼬인 곳이다. 누군가가 착한 일을 하면? 그 때문에 죽는다. 나쁜 일을 하면? 그래도 죽는다.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그래도 죽는다. 영화에서는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가끔은 살아 남기도 하는데, 그들의 생존과 죽음에는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다. 재수가 좋으면 살고, 재수가 없으면 죽는다. 동전 하나 때문에 살 수도, 죽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하나에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든,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은 멋대로 돌아가고 있고,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주에 있지 않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며, 자유 의지는 당연히 아무 짝에도 소용 없다. 인간은 철저하게 무력하다. 그리고 그런 무력함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존재가 바로 노인들이다. 노인은 무력함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궁시렁거리고, 불만을 내뱉는다. 레퍼토리도 항상 같다. 옛날엔 세상이 이렇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노인들이 젊었을 때는 세상이 이렇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들이 젊었을 땐 세상이 이렇다는 걸 몰랐던 거다. 

   젊은이들은 노인과 다르다. 그 어떤 위기와 난관이 닥쳐도 본인만 잘 대처하면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돈가방을 얻은 르웰린도 그랬고, 자신만만한 해결사 칼슨 웰즈가 그랬고, 심지어 꺼벙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킬러 안톤 쉬거도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철썩같이 믿고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인간은 아무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그저 순간순간 상황에 휩쓸릴 뿐.

  죽음이 임박한 나이가 된 노인들은 자신에게 운명을 통제할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 변한 건 세상이 아니다. 그들이 변한 것이다. 몸과 마음이 노쇠하면서 그간 느끼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치게 된 것 뿐. 세상은 말세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말세였다. 토미리 존스가 찾아간 선배 보안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기 집 현관에서 총을 맞아 죽은 보안관 선배의 죽음은 이미 100년 전 이야기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무너지고 자빠졌던 건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영화는 결국 이 심술궂고 어찌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길고 쓸쓸한 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