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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왕의 남자"

by kirang 2014. 9. 11.

2005년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이다.

배경이 궁중이다 보니 의상들이 화려하고 색감이 아름답다. 특이한 점은 왕과 대신들이 모두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왕의 어진 중에서 푸른 곤룡포를 입고 있는 이는 태조 이성계뿐이며, 대개의 왕들은 붉은 곤룡포를 입었다. 신하들은 품계에 따라 붉은 색, 푸른색, 녹색을 구분해 입었는데, "왕의 남자"에 나오는 신하들 중 붉은 관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궁궐 안의 싸늘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왕과 신하 모두에게 푸른색 옷을 입혔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제목에 비해 영화의 내용은 상당히 몸을 사린다. 본격적인 퀴어 영화가 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일까? 영화는 주인공들의 관계에 대해 계속 변명을 늘어놓는다. 장생이 연약한 공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지만, 그 감정의 실체는 분명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잠까지 같이 자는 처지(말 그대로 잠만)이지만 장생과 공길의 관계는 육체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장생은 다른 이에게 공길을 빼앗기는 것에 대해 명백한 질투의 감정을 드러낸다. 의심스러운 대사와 장면이 전개되는 가운데 장생과 공길의 관계는 마치 형과 동생의 사이처럼 '위장'되어 있다.

연산과 공길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연산 역시 공길에게 전혀 성적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보다 함께 인형놀이, 그림자 놀이를 하는 등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중간에 아주 짧은 입맞춤이 나오지만 에로티시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장난감에 대고 하는 입맞춤에 가깝다. 아무리 봐도 연산은 공길을 성적 욕구의 대상물로 보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길은 장녹수에게 연적이자 질투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렇게 변명처럼 보이는 연출의 비일관성은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에 의문을 들게 한다. 결과적으로 "왕의 남자"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어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이 되었으나, 그다지 도전적이거나 영리한 영화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