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 기랑의 백지 채우기
모든 것에 대한 리뷰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by kirang 2015. 5. 22.

(스포일러 있음)

  2015년 5월 개봉한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이다.

  모래, 금속, 화염을 연료삼아 폭발하는 영화이다. 달리고, 부수고, 날려 버린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질주만 하는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대단히 마초적으로 보이는 장르를 페미니즘으로 섬세하게 설계하였고 상당히 많은 상징들을 심어 놓았다. 영화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를 통해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영화의 타이틀은 '매드 맥스'이지만, 톰 하디가 연기한 맥스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그는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주체가 아니며, 오히려 사건에 우연히 말려 들게 된 보조자 내지 관찰자에 가깝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이다.

  퓨리오사를 비롯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개 긍정적으로 표현된다. 아름답고,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그들 사이에는 자매애가 흐른다. 그들은 해방과 구원, 생명을 위해 탈주하고 싸운다. 임모탄의 아내들이 처음 전면에 등장할 때를 상기해 보라. 그들은 절단기로 자신들을 옥죄던 정조대를 끊고 발로 차버린다.

  반면 남성들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시타델의 지배자 임모탄은 독재자이며, 그의 휘하에서 싸움을 담당하는 워보이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상당수의 남성들이 기형이나 병으로 인해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임모탄은 자신의 핏줄, 특히 '건강한' 아들의 존재에 대해 엄청난 집착을 보이는데, 이는 가부장제 하에서의 부계 전승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워보이 중 하나였던 눅스는 전투 트럭에서 여자들 손에 붙잡히는데, 여자들은 그를 죽이지 않고 달리는 트럭 밖으로 밀어내는 데 그친다. 그 과정에서 눅스는 '난 잘못한 게 없어!'라고 외치고 여자들의 리더인 스플랜디드는 '그럼 누가 세상을 망쳤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전세계가 사막화된 것이 핵전쟁에 의한 결과라고 보았을 때 인류가 공멸하는 전쟁을 벌인 주체를 '남성성'에 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잉태하고, 씨앗을 보관하는 주체는 '여성성'이다.

  앞에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퓨리오사라고 하였지만, 지도자로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은 스플랜디드이다. 그는 다른 여자들을 설득하여 이 탈주를 주도하였고, '우리는 소유물이 아니'며 '총알은 죽음의 씨앗'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만약 중간에 죽지 않았다면 시타델의 지도자로서 가장 적합한 이는 퓨리오사가 아닌 스플랜디드였을 것이다.

  초반부터 강렬한 액션이 몰아치는데 액션 신마다 다른 형태의 연출을 보여 주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인물들은 물론 개조된 자동차들의 개성 또한 뛰어나다. 특히 화염이 발사되는 기타를 연주하는 워보이는 등장할 때마다 눈길을 끄는 강렬한 캐릭터이다.

  액션이나 캐릭터 연출에 비해 서사에서는 약간 약점이 보인다. 가장 큰 부분은 소금 사막을 건너려 했던 퓨리오사 일행에게 맥스가 제시한 대안이다. 이게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소금 사막을 건너려 시도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를 알고 있는 '녹색의 땅'을 손에 넣자고 하는 주장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계곡을 폭파시켜 한동안 적의 발을 묶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위를 치우고 시타델로 몰려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또 시타델에서 남아 있는 주민들과 임모탄의 남은 부하들이 퓨리오사 일행을 거부한다면? 무모하고 엉성해 보이는 계획에 대해 더이상의 설명 없이 영화는 진행된다. 그리고 퓨리오사 일행은 그동안 힘들게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그래, 뭐, 자동차 액션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임모탄의 옛 부하들은 임모탄의 시체를 보고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직 세뇌가 되지 않은 어린 워보이들이다. 그들은 빠르게 리프트를 내리는 결정을 하였고 여기에 퓨리오사가 올라서며 비로소 혁명은 추인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를 쥔 것은 결국 새로운 세대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