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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리뷰

책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by kirang 2012. 2. 29.

강신주 (지은이) | 그린비 | 2007

그간의 독서 경험에 따르면 고전과 해설서가 모두 있을 때에는 고전부터 읽는 
편이 낫다. 해설서는 원전의 내용에 대한 독자의 사전 지식을 전제한 상태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원전 내용을 토막내어 소개하기 때문에 원전을 읽기도 전에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 주는 경우도 있고, 해설서 주제에 정작 원전보다도 내용이 더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고전에 쉽게 접근하겠다는 목적으로 해설서부터 손대는 것은 썩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평소 지론과 달리 "장자"를 아직 읽지 않았음에도 해설서인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시각은 들뢰즈를 비롯해 현대 철학 및 사회학의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아나키즘이다. 저자는 "장자"를 통해 아나키즘의 사유와 실천,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 자체도 그렇거니와 동양의 철학을 서양의 철학을 이용해 설명하는 작업은 흥미롭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저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주의자로서의 노자와 아나키스트로서의 장자를 대척점에 놓으며 양자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국가의 존재를 소극적으로 긍정하는 것과 국가를 절대적 가치의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을까. 노자가 치국의 도를 논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치국의 도는 인위를 배제하고 자연에 맡기는 치국의 도이다. 이를 '국가주의'라는 개념 틀에 집어넣어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자가 해석해 내는 2천 몇 백 년 전의 동양 사람인 장자와 근대 서양의 철학자인 스피노자, 현대의 들뢰즈가 공명하는 아나키즘적 사고의 연관성은 지나칠 정도로 매끄럽다. 때문에 오히려 의심이 든다. 저자의 의지가 지나치게 투영된 독해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몇 가지 의문은 남지만 
우선은 본격적으로 "장자"를 읽기 위한 계기로 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