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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01.07 16:48 역사 노트

  2018년 1월 3일 JTBC의 교양 프로그램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을 다루었다. 강연자는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이자 서예가인 김병기였다. 김병기는 시종일관 광개토왕비가 일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본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강연을 진행하였고, 그가 하는 주장들은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의 과장된 리액션을 통해 놀라운 탁견, 셜록 홈즈가 하는 기가 막힌 추리인양 연출되었다. 인터넷 반응을 보니 방송 내용을 좋게 보는 시청자들도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보며 전공자로서 화가 많이 났다.


  광개토왕비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연구사 정리만도 굉장한 품이 들 만큼 100년 이상 수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연구를 수행하였다.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이 제기된 것은 1972년 재일 학자 이진희에 의해서였다. 그는 광개토왕비 탁본에 따라 글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문제 삼았고, 20세기 초 일본의 육군 참모부가 광개토왕비의 일부 글자에 대해 석회 도포 작전을 수행하여 의도적으로 비문 내용을 변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학계에 무척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진희의 주장은 1980년대 들어 중국 학자 왕건군()의 연구를 통해 해명되었다. 왕건군은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에 장기간 머무르며 비를 상세히 조사하는 한편, 비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상세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광개토왕비에 칠해져 있는 석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입수되었다. 왕건군의 조사에 따르면 비에 석회를 칠한 이는 일본 육군 참모부가 아니라 광개토왕비 근처에 살고 있던 초씨 성을 가진 중국인 부자(父子)였다.

  이들은 광개토왕비 부근에 거주하며 탁본을 떠서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광개토왕비는 매끈하게 다듬은 비석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외형을 가진 비였기 때문에 탁본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풍화가 이루어진 데다가 발견 직후 비를 뒤덮고 있는 넝쿨과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비에 불을 지르는 과정에서 불길의 온도를 이기지 못한 표면이 갈라지고 깨지는 등 많은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역시 좋은 탁본을 얻는 데 장애가 되었다. 

  이에 초씨 부자는 탁본을 쉽게 뜨기 위하여 울퉁불퉁한 비 표면에 석회를 발라 다듬었다. 흐릿한 글자들의 윤곽을 보다 뚜렷하게 보이도록 손을 대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글자가 엉뚱한 글자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원래의 비문에 왜곡이 가해진 셈이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석회 탁본'은 그전에 만들어진 탁본들보다 글씨가 선명하고 깨끗하여 탁본 구매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꽤 오랫동안 탁본업에 종사하던 초씨 부자는 나중에 이 일을 그만 두고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왕건군이 조사를 할 당시 마을에는 초씨 부자와 잘 알고 지냈던 이웃들과 일가친척이 아직 거주하고 있었다. 왕건군은 그들의 증언을 통해 광개토왕비에 석회칠을 한 초씨 부자의 행위 전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장 조사에 근거한 왕건군의 연구로 인하여 일본 육군 참모부가 석회도포 작전을 통해 광개토왕비문을 변조하였다는 이진희의 주장은 논파되었다. 하지만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탁본의 사료적 가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이에 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지기 전에 제작된 탁본들이었다. 이를 '원석 탁본'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석 탁본의 수는 10여 개에 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즈타니본, 가네코본, 부사년본, 북경대 소장본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원석 탁본이 존재하는데 임창순본과 최근 조사된 혜정본이 원석 탁본이다.

  역사학자들은 원석 탁본을 통해 비문의 재판독을 시도하였다. 석회칠로 왜곡되지 않은 원형의 텍스트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몇몇 글자들의 왜곡을 바로잡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광개토왕비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묘년 조'의 판독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일본 육군 참모부의 석회 조작설을 믿었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원석 탁본에서도 해당 글자들은 기존의 판독문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원석 탁본에 대한 면밀한 조사 이후 광개토왕비문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판독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에서, 이 텍스트를 어떤 맥락에서 읽어내야 하는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견해는 광개토왕비문을 독해할 때 비를 세운 5세기 고구려인들의 의도와 욕망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비의 목적은 광개토왕의 훈적을 과시하는 데 있으므로, 고구려인들에게는 이를 돋보이기 위한 서사가 중요하였다. 광개토왕의 업적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가 무찌른 적이 허약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여야 좋다. 이에 주목한 것이 '악역'으로 설정된 '왜'의 존재이다. 고구려인들은 광개토왕비에 '왜가 원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와 신라를 공격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장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광개토왕이 벌인 정복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왜를 강대한 세력으로 과장해 묘사하여 광개토왕의 무훈 또한 더욱 빛나게 연출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재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 학계조차 더이상 광개토왕비 신묘년조 기사를 통해 임나일본부를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김병기의 강연을 들으며 화가 났던 것은 이러한 역사학계의 연구사가 깡그리 무시되었다는 데 있다. 김병기의 사고는 여전히 70~80년대 횡행하였던 낡은 문제의식의 틀에 머물러 있다. 신묘년 조 판독을 일본이 처음 제시한 판독과 다르게 해야만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이 부분이다. 김병기 개인이야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2018년에 방영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30~40년 전에나 횡행하던 낡디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김병기는 석회로 인한 비문 변조설을 넘어서 일본이 원석 자체를 변조하였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하지만 그 근거라는 것이 참으로 박약하다. 우선 본인이 광개토왕비 탁본 글씨를 구해서 그것을 따라 쓰다가 보니 '콱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변조된 부분이더라 라는 이야기. 그는 이것을 서예가로서의 육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기가 콱 막힌'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무슨 학문을 육감으로 하나.

  김병기가 비문 변조를 문제 삼는 부분은 그 유명한 신묘년 조 문장이다. 광개토왕비 1면 9째줄에 있는 문장으로, 그 내용은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소개한 대로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은 이 문장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깨뜨렸다"는 '도해파(渡海破)' 부분이 변조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변조되기 전의 원래 글자까지 제시하였는데, 그가 제시한 변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에 따르면 '도해파(渡海破)'는 원래 '입공우(入貢于)'였고, 이렇게 복원한 글자로 문장을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入貢于百殘□□新羅 以爲臣民". 김병기의 해석은 이러하다.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었다. 그렌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가야와 신라에게 조공을 들여놨으므로 (고구려가) 일본을 신민으로 삼아줬다.". 대단하다! 글자 몇 개 바꾼 것만으로 내용을 반전시켜 일본이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더 나아가 고구려의 지배를 받는 신민으로까지 만들어 버렸다.

  방송에서 이 김병기가 이 해석을 제시하는 장면은 웅장한 BGM이 은은하게 깔리고, 패널들은 박수를 치는 형식으로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널들의 발언. "(딘딘)우와, 멋있다.", "(홍진경)만약에 이게 진짜라면 진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거네요." 하지만 패널들과 달리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뒷목을 잡았다. 이건 철저하게 김병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은' 판독이다. 세상에 자기 입맛대로 획을 넣고 빼고 하면서 읽는 판독이 어디에 있나.

  김병기는 자신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게 서예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시하는 게 획의 수평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광개토왕비의 서체는 가로 세로 획이 일관되게 수평-수직을 모습을 보이는데, '조작된' 부분의 글씨는 오른쪽이 살짝 들려 있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인들이 근대에 들어와 명나라 서체를 참조해 만든 '명조체'의 흔적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광개토왕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비와 달리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가 아니다. 비신에 부정형의 굴곡이 많이 있으며, 석재 역시 입자가 거친 응회암이다. 똑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글씨가 새겨진 부위의 굴곡에 따라 획의 각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탁본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울퉁불퉁 골곡이 있는 광개토왕비의 비신 모습

  또 방송 상에서 보면 그는 글자의 대조를 할 때 '석회 탁본'을 사용하고 있다. 석회 탁본으로 글자를 대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광개토왕비에서 석회가 칠해진 부분은 신묘년조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광개토왕비에 석회를 칠한 것은 부근에 살며 탁본 장사를 하던 초씨 부자였다. 그들이 석회를 칠한 목적은 '역사 왜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탁본의 편이성을 확보하고, '예쁘고 잘 팔리는 탁본'을 생산하는 데 있었다. 때문에 신묘년조 뿐만 아니라 울퉁불퉁한 비의 표면 전체에 석회를 칠하였다. 즉, 김병기가 방송에서 보여준 비교 작업은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와 또 다른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들을 비교 대조하는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비면 전체에 석회칠이 되어 있는 광개토왕비의 모습

  김병기는 글자 조작의 또 다른 증거로 글자가 서로 줄이 맞지 않고 비뚤어져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앞서 말한 대로 광개토왕비의 비신 형태가 심하게 굴곡이 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의미가 없는 소리이다. 게다가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코오 가게노부의 묵수곽전본을 예시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은 애초에 제대로 된 탁본이 아니다. 글씨 형태에 맞추어 윤곽선을 그리고 나서 바깥 부분에 시커멓게 먹물을 칠한 '유사 탁본'이다. 그나마도 조각조각난 종이들을 맞추어 조립한 것이다. 김병기는 사코오본에서 '도(渡)'는 오른쪽으로, '해(海)'는 왼쪽으로 쏠려 있는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글씨가 조작된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코오본에서 다른 글자들은 다 줄에 맞추어 글씨가 배열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을 보면 확실히 신묘년 조(빨간색 박스)에서 '도'는 오른쪽으로 , '해'는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옆의 글자들(노란색 박스)를 보라. '도'의 오른쪽에 있는 두 글자도 일관되게 오른쪽으로 쏠려 있고, '해'의 오른쪽의 세 글자는 일관되게 왼쪽으로 쏠려 있다. 김병기의 주장과 달리 줄이 안 맞는 현상은 다른 글자들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근처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글자들이 한꺼번에 한쪽으로 쏠리는 등 일관된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글자가 치우쳐진 현상은 조작 때문이라 볼 수 없다. 비신 표면의 굴곡 문제이거나, 탁본 자체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김병기는 자신의 주장이 서예학적인 접근의 결과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입공우'라는 판독은 너무나 무리한 주장,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세번째 글자, '파(破)'가 원래는 '우(于)'였다는 그의 주장을 한번 검토해 보자.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다른 '우(于)'가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여 '파(破)'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우(于)'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광개토왕비에는 다른 곳에 '우(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것을 통해 김병기가 얼마나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왼쪽 빨간 박스(A)가 신묘년조의 '도해파(渡海破)'에서 '파'에 해당하는 글자이며, 오른쪽 빨간 박스(B)는 '우(于)'이다. 김병기는 '파(破)'에서 왼쪽 부수인 '석(石)' 부분이 조작되어 붙은 것이라 하였고, 원래 '우(于)'였던 글자에서 첫번째 가로 획을 지우고 그 밑에 일부 획을 추가하는 식으로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 A의 원래 '우(于)'는 크기가 매우 작은 글씨로 상정해야 한다. 또한 오른쪽으로 매우 쏠려 있었던 형태로 이해하여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궁색한 자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B를 보면 광개토왕비에서 '우(于)'는 크기도 클뿐 아니라 정사각형 공간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병기는 본래 서예가이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광개토왕비의 글씨가 멋지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정작 '入貢于'라는 본인의 엉뚱한 추정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광개토왕비의 글씨를 아주 졸렬한 형태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신묘년조 문장에서 '파(破)'가 원래 '우(于)'였을 것이라는 김병기의 주장은 그냥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김병기가 지나가듯이 한번 언급하고 말았지만 광개토왕비문 연구에서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뜬 원석 탁본은 매우 중요하다. 방송에서는 마치 일본인들이 처음 광개토왕비를 발견했다는 듯이 다루었지만, 실제로 광개토왕비를 발견한 것은 중국인들이었고, 처음 탁본을 뜨기 시작한 것도 중국인들이었다. 집안 지역에서 오래된 고비가 새롭게 발견되자 북경 등지의 서예 감상가와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고, 그 결과 북경의 유명한 탁본가들이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을 며칠 씩 방문하여 탁본을 떠가게 되었다. 나중에 탁본업에 종사하게 된 초씨 부자는 원래 이들을 안내하는 이들이었으나, 어깨 너머로 탁본 제작법을 배우고 나서 급기야 탁본업자로 직업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원석 탁본에서는 해당 글자들이 어떻게 보일까.

 

(*추기 : 가네코본, 미즈타니본, 부사년본이 원석탁본임을 믿을 수 없으며, 임창순본과 혜정본만 원석탁본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심병 가진 사람이 있어 임창순본과 혜정본도 추가적으로 공개한다. 물론 이걸 보고도 안 믿을 테지만.)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원석 탁본에서는 두 번째 글자인 '해(海)'가 잘 안 보인다. 이 부분의 비신에 크랙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자들 중에서 '해(海)'를 판독불능자로 처리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왼쪽에 물 수변을 인정하지 않고 '매양 매(每)'로 판독하기도 하며, 남아 있는 몇 개의 자획과 전체 문장의 맥락을 감안하여 '해(海)'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나머지 글자들은 획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병기가 광개토왕비는 석회가 칠해지기 전인 원석 단계부터 이미 조작이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석 탁본의 글자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 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탁본은 일본인들에 앞서 중국인들에 의해서 이미 제작되고 있었고, 사코오가 광개토왕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묵수곽전본을 구한 것은 나중 일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 중국인들이 제작한 광개토왕비 탁본의 글자들은 모두 일관되게 위와 같은 자형으로 판독되고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광개토왕비의 원래 글자가 맞다고 판단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를 끝내 부정하는 것은 '일본이 분명 비문을 조작하였을 것'이라는 최초의 선입관이 합리적인 사고 흐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기의 주장처럼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석회를 조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 석회칠은 글자의 획을 지우거나 새로 만드는 게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있는 글자에 새로 획을 추가해 새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획들은 어떻게 지운다는 것인가. 탁본에 보이는 획은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있는 획을 없애려면 돌에 새겨져 있는 획을 메꾸어 채워야 한다. 원석에서 그러한 작업을 어떻게 하였다는 것일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도 원석 단계에서 글자가 조작되었다는 김병기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탁본업에 종사하던 중국의 초씨 부자는 비면에 석회를 칠한 행위로 광개토왕비를 훼손하고 후대 연구에도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들에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손님들이 좋아하는 깨끗해 보이는 탁본을 떠 팔기 위해서 석회를 발랐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이들의 무지는 결과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큰 해가 되었다. 나는 "차이나는 클라스"가 석회 탁본을 만들어 팔았던 초씨 부자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지식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게 적당히 가공하여 방송하는 것이 과연 교양 프로그램의 본령과 어울리는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추가*

  자꾸 내 블로그에 찾아와 김병기의 방식이 과학적라고 떠드는 분이 있어서 포토샵을 이용해 김병기가 원래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형태로 복원해 보았다(위가야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참고하여 포샵질을 해 본 것이다). 자, 한번 이 모습을 '과학적'이고, '서예학적'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참고로 위가야 선생은 만약 당시 고구려 석공이 이런 식으로 글씨를 새겼다가는 목이 날아갔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posted by 기랑 k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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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덱스 2018.01.13 00:10 신고  Addr Edit/Del Reply

    저기 호치라는 분은 서예학 전문가인가요 역사학 전문가 이신가요 그냥 장삼이사 같은데 강원대 강사로 역사학자인 기랑님 블로그 와서 횡패를 부리는 거죠? 나이도 많아 보이는 분이 왜 저러실까 손주 보기에 안 부끄럽나 ;;;; 무튼 기랑님 고생이시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원츄~!

    • 아미 2018.01.13 20:47 신고  Addr Edit/Del

      인덱스님 알바비는 얼마나 많이 받고 있습니까 학자도 아닌 사람이 무슨 학자인 김병기 교수 주장을 허구라고 덤벼보겠다는

      사람을 역사학자라고 치켜세워 홍보해주는 용비어천가 내용 아주 잘 봤습니다 역사 논쟁에서 쓸데없는 나이 타령이나 하는거 유치하지 않습니까

      역사 논쟁이 무슨 나이 자랑하는 곳인가요 한편의 용비어천가 끝내주게 잘 봤습니다

    • 인덱스 2018.01.13 22:25 신고  Addr Edit/Del

      기랑님은 역사학 전공자이시고 강원대에서 강사로 재직중 이라고 신문기사에도 나오는데요 김병기는 역사학 전공자도 아닌데 역사학에 무슨 전문가죠? 어디 명인이면 다른 분야에도 입김을 내도 된다고 여기시나 잘 보셨으면 이제 병기 잡고 자위 그만하시고 한 획 그으세요 위에 보니 한 분이 지적해두셨던데 유치하게 안 보인다 틀렸다 하는 분이 저에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네요 땡깡쟁이가

    • 인덱스 2018.01.13 22:29 신고  Addr Edit/Del

      여기 역사학자인 기경량 님 개인 블로그맞는데요



      http://www.kado.net/?mod=news&act=articleView&idxno=877451
      강원사학회(회장 류승렬) 2017 추계 정기 학술대회가 14일 강릉 명주예술마당 공연장에서 ‘강원의 도시와 역사’를 주제로 열렸다.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근·현대 강릉 중심부 공간 활용 추이와 그 요인(가톨릭관동대 임호민)’,‘강원 감영의 이전과 원주의 근대도시 형성과정(세명대 심철기)’,‘1940년대 ㈜삼화제철의 경영사 연구(서울대 정안기)’,‘사이비 역사학의 고대사 사료 이용의 문제점(서울대 기경량)’ 등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논의가 이어졌다.한편 강원사학회 학술지가 올해 한국연구재단 평가에서 등재후보 학술지로 선정됨에 따라 지금까지 매년 1회 발간되던 학술지가 내년부터는 연 2회 발행으로 확대·심화된다. 최동열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603151555291&pt=nv

      고대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역사학계가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말 출간된 계간 <역사비평> 봄호는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기획물에서 세 편의 글을 실었다. 주류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으로 매도하고, 고대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의 영토와 영항력을 강조하는 주장을 ‘파시즘’에 근거한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기경량 강원대 강사, 성균관대 박사과정인 위가야씨, 연세대 박사과정 안정준씨 등 30대 연구자 셋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사이비 역사학’이 ‘철 지난 유행’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지속돼 학계와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계기는 지난해 말 중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과 동북아역사재단의 한국사 지도 중단 사태다.

    • 아미 2018.01.13 22:54 신고  Addr Edit/Del

      김병기 교수는 서예 역사를 연구하는 분이라 고문헌 자료 검증에 한자 서예에 능통한 그분의 능력이 필수적이지

      자료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서는 어떻게 역사 연구를 할수 있나요
      인덱스님은 특정 사학자 홍보하기 전에 역사학의 기본 개념부터 공부하는게 좋겠습니다 이거 뭐 역사 논쟁인지 홍보질인지 분간이 안된 가지고

    • 호치 2018.01.13 23:03 신고  Addr Edit/Del

      억지만 편파적인 강단 사학자들을 홍보하는 것인가요 사이비 역사학 누가 누구보고 사이비에요

      자신들과 반대되는 역사관을 사이비 유사라고 비난하는등 역사를 색깔론씩으로 즐기니까 세간의 거센 비난을 받는 것이지요

      땡깡쟁이보다는 아첨하는 기생충이 더욱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요 인덱스님

    • 호치 2018.01.13 23:23 신고  Addr Edit/Del

      역사를 자료 근거에 입각한 논쟁보다는 패거리 역사관 논쟁으로 인신공격까지 자행하는 저런 역사학자들의 행태는 지탄 받아야 한다 세간에서 저런 역사 학자들에 대한 비난이 많다는 걸 모르나

      자신의 역사관은 옳고 남의 역사관은 그르다는 사관 색깔논쟁이나 하라고 역사학이 존재하는줄 아나

      중요한건 근거와 논리로서 승부하란 말이다 색깔론으로 승부하지 말고
      그런데 이런 사학자들은 역사를 무슨 편가르기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어서 문제이다

      상대방의 주장이 객관적인 근거가 탄탄하면 수용할줄도 알아야 하는게 역사학의 기본 맥락이거늘

      도대체 이 사람들은 역사 논쟁하려고 온거냐 편가르기 싸움 하려고 온거냐

      기랑 인덱스 등 이분들의 글을 보면 말이다

    • 야만인 2018.01.14 00:39 신고  Addr Edit/Del

      병기랑 형구 홍보전 하던 분 누구더라~~ 근거가 탄탄한 주장에 안보인다 어쨌든 의심된다고 하고 아이디 바꿔서 두사람이 주장하는 거처럼 여론전으로 객관적인냥 사기 치던 사람은 또 누구더라 호치-아미상 아니지 아미-호치상인가 ㅋㅋㅋㅋ

    • 야만인 2018.01.14 00:44 신고  Addr Edit/Del

      그리고 민족사학자가냐 강단사학이냐 이분법 한건 당신들이지 전공수련도 안한 치들이 무슨 역사학자라고 비벼 ㅋ
      역사학자 아닌 사람이 역사학자보고 역사학자 아니라는둥
      역사학은 그런거라는동 하는게 사이비고 돌팔이 인거지 ㅋㅋㅋㅋ 도검공장장이 검도 9단 한테 가서 당신 검법 틀렸다는 꼴이래도 ㅋㅋㅋㅋㅋㄱ 도검을 잘 만든다고 타분야에 비벼도 된다는게 그거 부터 문제라니까? ㅋㅋㅋ 이해를 못하네 호치-아미상은 ㅋㅋㅋㅋ

    • 인덱스 2018.01.14 01:50 신고  Addr Edit/Del

      아미님 역사학자 아닌데 역사학자라고 용비어천가라고 하시길래 기경량님이 언급된 수 많은 기사중에서 두 개 기사를 링크와 본문을 발췌해서 댓글 달았는데요 아미님은 뭘 보시고 기랑님이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랑님이 차단 안하고 있는거지 그냥 차단해버려도 되는거 들어주고 있는걸 감지덕지로 여기세요::;

      호치님 저는 사이비 역사니 강단사학이니 선 긋고 한 적 없습니다 역사학자 아니라고 아미님께서 말씀하시길래 강남도민일보의 기사와 주간경향에서 기경량님이 역사학자로 언급된 부분을 발췌해 왔을 뿐입니다 기사가 마음에 안드시면 저 기사를 적은 기자분께 이의를 제기하시고 정정보도를 요청하세요 익명의 아미님 호치님이 강원도민일보와 주간경향의 기사보다 공신력 있는 분이신지는 ;;;;; 모르겠습니다

  3. ㅇㅇ 2018.01.13 01:23 신고  Addr Edit/Del Reply

    저 방송 보면서 저 파라는 한자가 원래 우였으면 비율이 안맞는거 아닌가? 하면서도 자세히 몰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의문이 해결되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 ㅇㅇ 2018.01.13 01:49 신고  Addr Edit/Del

      이 댓글 달고 기랑님 블로그 포스트들을 봤더니 흥미로운 내용이 많네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게 생겼는데 혹시 비전공자에게 추천하시는 역사책이 있으신가요?
      가급적 학자 자신이 주장하는 학설보다는 학계 정설에 기반해서 쓰여진 것으로요

    • 기랑 kirang 2018.01.13 13:21 신고  Addr Edit/Del

      안녕하세요. 일반인에게 추천할만한 고대사 관련 책으로는 "한국고대사 산책"(역사비평사)가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사이비 역사학과 관련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우리시대의 한국 고대사"1,2권나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만들어진 한국사"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한국생활사박물관"1~12 같은 책은 그림도 같이 있어서 한 질 정도 집에 소장해 두기 좋습니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1~5도 괜찮은 책 같습니다.

      그밖에 북방사 쪽 책을 보고 싶으시면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간한 책들이 괜찮습니다. 책을 사보셔도 되고 홈페이지가시면 무료로 PDF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으니 참고하세요.

    • 호치 2018.01.13 19:10 신고  Addr Edit/Del

      김병기 교수의 사라진 비문 찾아서라는 책을 잃어보시고 이형구 교수의 광개토대왕릉비라는 책을 읽어보실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이 두 교수가 광개토대왕릉비를 제대로 분석하였지요

    • 야만인 2018.01.13 20:19 신고  Addr Edit/Del

      호치는 역시 낄데 안 낄데 분간도 못하네 기랑님 보고 학계
      정설에 기반한 책 추천 해달라했는데 지는 왜낀데 ㅋㅋㅋ 병기 책이랑 형구 책이 학계 정설에 기반한 책인가 ㅋㅋㅋㅋ ㅋ ㅋㅋㅋㅋㅋㅋㅋ 학계 정설이 뭔지 모르지 호치상?

    • 호치 2018.01.13 20:37 신고  Addr Edit/Del

      야만인 학계 정설이라고 거짓으로 들먹이지 마라 그따위 거짓말로 니 어거지가 통할수 있을 것 같으냐 한심하다

      비전문가의 무근거성 편향된 주장을
      학계 정설이라고 왜곡하나

      야만아 미개한 니 아이큐나 개선할 생각이나 해라 여기 끼어들어봤자 너만 망신당할 뿐이야

    • 야만인 2018.01.13 21:49 신고  Addr Edit/Del

      난 병기랑 형구 책이 학계정설이 아니랬고 정설인 책은 말 안꺼냈는데 ? 호치상 정말 와들와들 떨려서 댓글이 안써지나봐 ㅋㅋㅋㅋㅋ

    • 호치 2018.01.14 00:13 신고  Addr Edit/Del

      o o 님 于가 뭐가 비율이 안맞는다는 것인가요 서예학적으로 于의 연구 분석한적 있나요

  4. 김케이 2018.01.13 01:54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대로, 중간의 해(海)인지 매(每)인지 정말 안 보이긴 하는군요 ㅎㅎ

    • 기랑 kirang 2018.01.13 13:24 신고  Addr Edit/Del

      네, 그렇지요. 그런데 앞 글자가 '도(渡)'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 뒤에 위치한 글자는 '강(江)'이나 '해(海)'가 되는 것이 문맥상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가로획 몇개가 선명하여 원 글자가 해(海)일 가능성을 높여 주지요.

      개인적으로는 저는 '渡[海]破'의 형식으로 괄호 표기를 해서 추독임을 나타내어 판독문을 제시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 아미 2018.01.13 20:35 신고  Addr Edit/Del

      탁본의 글자가 해(海)자인지 불확실합니다 해(海)자라고 단정짓는건 마모가 심한 글자를 자의적으로 부풀려서 해석하는 것일 뿐입니다

      김병기 교수와 이형구 교수는 탁본에서 도해파의 중간 글자는 해(海)대신 공(貢)이나 인(因)이라고 판독하였고

      이형구 교수는
      일반적으로 해(海)자의 변조 이전 원형 글자가 인(因)이라고 분석하였지요
      해(海)자가 이전 원형 글자를 변조할때
      변조 기법상 해(海)자의 변형 가능한 원형 글자는 인(因)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인(因)자는 네모진 획에다 대(大)자를
      네모진 속에다 집어넣은 6개의 획으로 구성된 모양의 글자로
      10개 획으로 구성된 해((海)자보다 획이
      적은 문자로

      그럼으로 변조할때 획이 적은 원형 문자를 조금씩 해((海) 변형해주면 변조 기법상 아주 용이하지요

      인(因)자 옆에다 氵라는 세개의 점획만 추가하고 사각형 안의 글자만 조각하면
      간편하지요

      객관적으로 봤을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해파의 중간 괄호안에 해((海)자라는
      주장은 자료 증거를 엄연하게 무시하여 개연성이 결여된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지요

      그리고 탁본의 도해파 추정 글자라고 한 도(渡)자라고 주장한 해당 탁본 자료사진을 보면 이게 도(渡)자인지 별(辰)자인지

      혼동될 정도로 정확하게 식별 안되었고
      그러나 그러나 식별 가능한 도자 추정 글자의 획의 길이를 보면 별((辰))에 가까운 획의 길이인 것으로 분석되지요





    • 야만인 2018.01.13 22:18 신고  Addr Edit/Del

      辰因 진인 도해파가 아니라 진인파라는 건데 석회 뿌려진거 외에 물리적인 변조흔이 원비에 남아 있지 않데도 아직 매달려서 그러고 있다 저 단어라고 하면 내용의 아귀가 맞아 집니까? 해석을 한번 봅시다 별이 들어와 깨뜨렸남? 유성에 맞았나? 광개토대왕께서 메테오스트라이크를 시전하셨던게 분명하다는게 제 분석입니다
      자의적으로 부풀려서 해석하는 것일 뿐입니다 ㅎ.ㅎ

      병기는 입공우인데 도해파로 변조 되었다하고 형구는 진인이라는 거여 뭐시여 좀 통일 좀 하지요? 너가 보기에 도자가 진자로 보인다는 거시여? 거참 자의적 해석 오집니다요
      어쨌든 조작되었다는 것에만 끼워 맞춰야 되니 내용의 흐름은 이제 신경도 안쓰는구만요 에휴

    • 호치 2018.01.13 23:15 신고  Addr Edit/Del

      야만인 아직도 무식한 티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독해력이 떨어지나 누가 辰자가 맞다고 했나 위의 탁본의 도해파 글자중 첫 글자인 도자의 추정 글자가 辰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비슷하다고 했지 辰가 100%맞다고 했냐

      비슷함과 정답의 낱말 의미 차이를 그렇게도 몰라 국어 공부를 제대로 했냐

      김병기 교수는 입공우라고 판독했고 이형구는 도해파중 도해를 공인이라고 판독했지 한문 실력도 없는 것이 김병기 이형구 두 교수의 판독을 어설프게 지적하겠다고 나서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야만인 코미디언이나 해라

    • 야만인 2018.01.14 00:26 신고  Addr Edit/Del

      그래? 100%가 아니셔? 인파야 입공우야 병기랑 형구랑 둘이 주장 하는 글자가 다른데 의견통일 부터 하라니까? 어떤 글자이냐 따라서 문맥도 달라지고 해석도 달라지는데 광개토대왕비가 아무글이나 갈겨논 석비야? 모야? 머가 들어와서 깨진거야?

      어찌됬든 도해파만 아니면 되고 조작이 맞다고 끼워 마추고 있자너 호치야 ㅋㅋㅋㅋㅋㅋ 역사학계의 정설을 서예가랑 소수설 들고와서 비전문가니 마니 하고 있냐 ㅋㅋㅋㅋ 자기 닉네임으로 이 조그마한 블로그 댓글 여론을 조작해보려고 아미라고 했다가 호치라고 했다가 밑에 블로그 쥔장이 밝혀 주셨다 쥔장은 블로그 시스템 적으로 구분 된다 호치아미상 진짜 ㅋㅋㅋㅋㄱㅋㅋㅋㅋ 재밌는 양반이네

  5. 달비 2018.01.13 02:21 신고  Addr Edit/Del Reply

    바른정보 감사합니다

  6. 행인 2018.01.13 08:54 신고  Addr Edit/Del Reply

    오 새로운 사실을 알고갑니다

  7. 일단 위의 '아미'와 '호치'는 동일 인물임을 밝혀 둡니다. 도대체 무슨 지극 정성으로 남의 블로그에 와서 저렇게 아이디까지 바꿔가며 답글을 열심히 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편 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다중이 놀이를 하시는 건지.

    그리고 보면 볼수록 아무말 대잔치네요. 그러니까 님은 문제의 글자가 '渡海破'가 아니라 '辰因破'라는 거죠? 그럼 "倭以辛卯年來 辰因破百殘□□新羅 以爲臣民"라는 문장이 되겠네요. 자, 그럼 해석 좀 해주세요. 대단하신 고견을 한 번 들어봅시다.

    • 호치 2018.01.13 23:39 신고  Addr Edit/Del

      일단 기랑과 인덱스 야만인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도대체 전문가의 분석을 무슨 근거로 부정하겠다는 배짱이 어디에서 나오는 법인가요

      개나소나 전문가 분석 부정하면 그게
      신빙성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김병기 교수의 연구는 기록의 신빙성을 검증하는게 아니라 자료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자는게 그 취지이지요

      기록된 사실의 신빙성과 자료의 진위성을 이렇게 구분못해가지고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나요

      辰자가 전체적으로 맞다고 했나요 도자의 추정 글자의 획이 辰자와 비슷하다고 하였지

      분석된건 획의 길이라고 하였지
      언제 별자가 전체적으로
      맞다고 했나요

      한심하기 그지 없네요

      상대방 주장에 대한 독해력이
      그렇게도 떨어지나 그렇게 낱말 의미 몰라요 국어 공부를 못한 티를 내는구만

      그리고 문맥이나 문장은 글자 한자한자의 의미에 기반을 두는 것이지
      글자 한자의 의미를 누락하고 편의적으로 해석하면 그게 제대로된 해석이 되나요

      어거지적 해석일 뿐이지요

      김병기 교수의 연구 분석을 서예학적 근거없이 부정하려고 하는 행태가 참 보기 좋습니다 ㅎㅎ

    • 야만인 2018.01.13 23:56 신고  Addr Edit/Del

      호치 애쓴다 아미랑 너랑 동일인이였어? ㅋㅋㅋㅋ 블로그 쥔장은 시스템상 구분이 가능하단다 너가 블로그 파서 거짓말인지 확인해보렴 ㅋㅋㅋㅋ 호치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호치야 나이 그래 먹고 그러고 싶니? ㅋㅋㅋㅋㅋ

      호치야 입공우야 진인파야? 조작되었음 원래 글이 뭔데 ㅋㅋㅋㅋㅋㅋ 진자가 아니야? 진자로 보이는 길이의 글자 말해보렴 어찌 됬든 도자가 아니라고 매달리냐 ㅋㅋㅋ 질척인다 질척여 ㅋㅋㄲ

    • 호치 2018.01.14 00:16 신고  Addr Edit/Del

      망상도 여간 심한게 아니구만 여기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만 모인 공간이구만 전문가의 분석을 개나소나 억지 부정하는 행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싶었더니 착각 몽상을 사실 현실로 판단하는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서 발현되었구만

      역시 비정상인들과 입씨름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 야만인 2018.01.14 00:17 신고  Addr Edit/Del

      검증이 끝난게 학계정설이야 정설도 아니고 역사학 전공자도 아닌 비전공자의 횡설을 가져와서 의문제기 수준도 아니고 우기기만 하면서 위에 보니 블로그 주인이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음해까지 해놨더라 ㅋㅋㅋㅋ 다중이 노릇으로
      참나 ㅋㅋㅋㅋㅋㅋ 기똥 찬다 기똥차 부끄러움도 없고
      아미 - 호치상? 그래서 니 전공분야는 먼데

  8. 호치 2018.01.13 23:49 신고  Addr Edit/Del Reply

    문맥이나 문장은 글씨체의 성격 같은 자료 검증을 제대로 하고서 구성하는게 일반적이지 글씨체 검증을 하지 않고서 지 편의대로 맞추면서 하는 문맥이고 문장이냐 문장 문맥 운운하기 전에 글씨체 진위 검증을 먼저 하는게 기본이다 자료가 검증받지 않고서는 어떻게 제대로된 진실을 도출해 낼수 있겠는가 역사학이 무슨 이런 자료 검증 없이 창작으로 나대는 학문인줄 아나요 개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럴려면 아예 창작문예가로 활동하시는게 어떨 런지

    동양의 역사를 전공하려면 최소한 한문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 야만인 2018.01.14 00:17 신고  Addr Edit/Del

      검증이 끝난게 학계정설이야 정설도 아니고 역사학 전공자도 아닌 비전공자의 횡설을 가져와서 의문제기 수준도 아니고 우기기만 하면서 위에 보니 블로그 주인이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음해까지 해놨더라 ㅋㅋㅋㅋ 다중이 노릇으로
      참나 ㅋㅋㅋㅋㅋㅋ 기똥 찬다 기똥차 부끄러움도 없고
      아미 - 호치상? 그래서 니 전공분야는 먼데

    • 장래건 2018.01.14 00:18 신고  Addr Edit/Del

      호치 님은 한문은 고사하고 한국어부터 제대로 배우시길 권유드립니다. 댓글이 온통 비문(非文) 투성이에요. 이제 그만하시고, 한국어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겁니다. 100세시대이니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화이팅!

    • 야만인 2018.01.14 00:52 신고  Addr Edit/Del

      장래건님 저두 비문투성이라 가슴이 찌릿하네요 저는 역사서 교양삼아 읽는 사람이고 기랑님 블로그 한 번씩 와서 눈팅 하다 가는데 왱알왱알 대니 댓글 안 달 수가 없더라구요
      장래건님 댓글에 시끄럽게하고 기랑님 블로그도 시끄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저런분ㅇ온라인에서 다중이 노릇하다가 오프라인에선 정상인처럼 다닐꺼 생각하니 소름이 돋습니다

    • 장래건 2018.01.14 20:47 신고  Addr Edit/Del

      야만인 님을 겨냥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혹 마음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호치 님은 한문도 못 읽는 것 같은데, 겨우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 읽는 수준으로 비문의 내용을 문제 삼기 시작했네요. 제가 호치 님이라면, 역사학, 서예학을 운운하기 전에 먼저 그 학문의 방법론과 전제를 좀 더 면밀하게 공부할 것 같습니다. 야만인 님도 이런 분들을 멀리하는 쪽이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습니다.ㅋㅋㅋ

    • 야만인 2018.01.14 23:20 신고  Addr Edit/Del

      장래건님 저가 맘상할꺼 까지야 있겠습니까 저가 지레 그런겁니다 ㅎㅎ 사과가 불필요 합니다 ㅎㅎㅎ

      호치-아미 씨 같은 분들을 보면 같은 수준에서 상대를 해 드려야 깨우치지는 못해도 이를 갈면서 떠나가더라구요 자기는 기경량님을 음해 비방 날조 오독 곡해로 공격하던 치들이 근거를 대어 달라는 요구에는 인신공격 당했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이상한 동네다 피코를 하거든요 장래건님께 논리적으로 안한다고 입을 털 때 ㅋㅋㅋㅋㅋ 웃겨 죽는줄 알았습시다

      전혀 자기객관화가 안되는 모습들이죠 아마 민족의 역사를 수호하고 일제의 잔재를 척결 한다는 서사과잉이 아닐까 서사과잉이 모든 비합리적인 언동을 합리화 하고 있다 추측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정신건강 유념토록 하겠습니다 슬슬 떠날까 했는데 저 밑에 간다 하고서는 다시 나타났네요 조금만 더 상대하고 떠나 보겠습니다 ㅋㅋㅋㅋ

  9. 호치 2018.01.14 00:53 신고  Addr Edit/Del Reply

    장래건님이나 서예학부터 배우세요 자료의 진위 여부를 감별하고 제대로 인용하려면 서예학부터 배우는게 낳지 않을까요

    • 야만인 2018.01.14 01:13 신고  Addr Edit/Del

      서예학을 낳아? 장래건님 배움을 낳을 수 있으십니까?

      손가락이 부들부들 하는가 보구만 ㅋㅋㅋㅋㅋㄱ 역사학자보고 역사학자 아니라고 다중이 짓으로 여론전 음해하던 사람 어디 가셨나? ㅋㅋㅋ 할 줄 아는게 붓글씨 밖에 없나 봐 ㅋㅋㅋㅋㅋ 텅텅

  10. 호치 2018.01.14 00:54 신고  Addr Edit/Del Reply

    침소봉대와 인신 공격이 지배하는 여기 블로그의 천박한 행태가 배여 있는 곳이라고 볼수밖에 없네요

    • 야만인 2018.01.14 01:10 신고  Addr Edit/Del

      인신공격을 너는 안했던가 ㅋㅋㅋ ㅋ 우리 앞으로는 인신공격 서로 하지 말자 호치야 ㅋㅋㅋㅋㅋ 아미라는 다중이 만들던 어르신이 그리 말씀 하시니 신뢰가 팍팍 떨어지긴 해

  11. 호치님 바닥도 보이고 하니, 이제 그만 집에 가세요.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12. 행인 2018.01.14 02:17 신고  Addr Edit/Del Reply

    원탁본에서 도해파가 보인다고요? 이도학 교수는 도해파의 海를 是로 읽으셨더군요.

  13. 보리 2018.01.14 05:00 신고  Addr Edit/Del Reply

    (도 해 파)에서 (입 공 우)으로 변경되었을때의 의미 잘알고 갑니다.

  14. 광개토태왕 2018.01.14 05:07 신고  Addr Edit/Del Reply

    도해파가 맞다고 전해라...

  15. 행인/ 이도학은 중국 학자 경철화의 의견을 따라 '渡海破'를 '渡每破'로 읽습니다. 이도학은 이미 1993년부터 그런 입장을 보였고, 2006년에 출간된 본인의 책 "고구려 광개토왕릉 비문 연구"(서경)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海'로 읽든 '每'로 읽든 전체 맥락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每'로 판독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중국의 경철화인데,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과거 고구려의 속민이었으므로 종래 조공하였다. 그러나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 매번 백제와 신라를 싸워서 모두 이기고, 그들을 자기의 신민으로 삼았다.".

    이도학의 경우는 판독문은 경철화의 안을 대체로 따르면서도 끊어읽기를 다르게 해서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었으므로 이때까지 조공하였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건너오자, 그때마다 격파하였다. 백제가 (배반하여)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합니다. '파백잔' 뒤에 나오는 안 보이는 세 글자를 판독이 아니라 그냥 '추정'을 해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도학의 해석은 짧은 문장 안에서 주어가 왜->고구려->백제로 계속 바뀌는 정인보식 해석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호치 2018.01.14 19:56 신고  Addr Edit/Del

      해(海)자를 매(每)자로 판독하자는 경 교수의 판독대로라면 왜가 신묘년부터 자주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는 어색한 문법이 되므로 문맥상 이상한 문장 의미가 되는 내용이 되지요

      아니 상식적으로 봤을때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 백제 신라를 격파한다는 전쟁을 자주 한다는 해석 문장이 문법상 상식적인 의미 전달이 결여되는 황당한 색채의 해석 내용이 될수밖에 없고

      애매한 내용이 될수밖에 없지요
      매(每)자의 판독대로라면 왜가 백제 신라를 침략한 주체이지
      아니면

      고구려의 백제 신라 침략을 지원해주는 주체인지 모호해질수밖에 없었고 매양 자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자인 매(每)자대로 구성한다면 신묘년 백제 신라 격파 전쟁이 왜가 주체가 되는 전쟁인지 아니면 고구려의 백제 신라 정벌에 왜가 지원만 하는 보조가 되는 전쟁인지 어느 한쪽이 성립이 안되고 모호성만 강화시켜 주는 문장만 될뿐입니다

      도대체 왜의 전쟁 목적과 침략 경로가 생략되는 이상한 의미의 문장이 성립될수밖에 없습니다 그 판독안 대로라면 말이지요

      해(海)자는 신묘년 문장 구조에서 바다를 의미하는 문자로 매(每)자로 바꾸어서 판독된다면 왜가 바다를 건넌다는 문법은 성립되지가 않지요

      매양 건넌다는 표현만 될뿐이지
      건너는 장소가 육지인지 강인지 바다인지 어떻게 알겠나요 구체성이 결여되고 애매함만 증폭시키는 이상한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경 교수의 해석이나 일본측 해석은 문법상 부자연스럽고 자국에 아전인수씩으로 문장을 끼워맞춘 것이라
      객관적으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 기랑 kirang 2018.01.14 20:04 신고  Addr Edit/Del

      호치/ 헛소리는 이제 그만.

    • 호치 2018.01.14 20:28 신고  Addr Edit/Del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하여 매자를 바다를 건넌다는 의미의 문자로 오독한 기랑 그대가 헛소리 하는게 아닌가

  16. ㅐㅐ 2018.01.14 12:38 신고  Addr Edit/Del Reply

    역사학자들이 한문 잘 못 한다 지적했는데 여기 댓글란도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爲臣民 신민 삼다.
    以爲臣民 신민 삼으려 하다.
    以爲臣民以 신민 삼으려 했으므로.

    以를 왜 연달아 썼는지 잘 생각들 해보세요.

    • 야만인 2018.01.14 14:57 신고  Addr Edit/Del

      안온다 하지 않았습니까? 정신병 취급 받는게 억울하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상생활 가능하신가 의문을 제기했던 제 추론이 들어 맞았네요 일상생활 안되시네

      아직도 역사학자들이 한자 모른다는 궤변을 ㅋㅋㅋ 좀 자의적 정의를 남발하는게 아니고 많이 자의적으로 해석 하고 있으신거 모르시죠? 아직도 서예가 말들어야되 하고 싶나 봅니다 아미-호치상 ㅐㅐ님같은 부류들은 왜 자기 객관화는 안되면서 투사심리를 가지고 역사 학자들에게 똥볼을 던지는지 모르겠어요

      저 위에 아미-호치상은 다중이 짓으로 블로그 주인장 역사학자 아니다 전문성 없다 두사람이 의견내는 것처럼 사기치다 여론몰이 음해 하다 들키더니 인신공격 하는 블로그라고 땡깡 부리고 떠났는데 님은 떠난다고 했다 다시 돌아 오셨네 ㅋㅋㅋㅋ 정말 웃기는 분들이에요

  17. ㅐㅐ/ 이건 또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신지요? '爲'는 그냥 '~가 되다'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용법이 다양하니, '~로 삼다'라는 해석도 가능은 하죠. 그에 비해 '以爲'는 좀더 확실하게 '~~로 삼다', '~~로 여기다' 정도의 의미이고요, 마지막으로 님이 제시한 '以爲臣民以'은 그냥 끊어읽기를 잘못한 겁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죠. "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파하고 신라를 ~~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영락)6년 병 신에 왕이 직접 [관]군을 이끔으로서 백제를 토벌하였다. ). 즉 마지막 '以'은 뒷문장의 시작인 '六年丙申'의 앞에 붙는 거에요. 전체 문장 앞에 '以'가 붙은 사례가 이미 신묘년조에 보이고, 비문 앞쪽에 보면 "以甲寅年九月廿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산릉으로 옮겨 모셨으므로, 이에 비를 세워 훈적을 새겨 기록하여 후세에 보인다.)"의 사례가 있어요.

    상대해 드리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어디서 어설프게 주워 듣고 아는 척하며 허세 부리는 건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나 하세요.

    • ㅐㅐ 2018.01.14 20:28 신고  Addr Edit/Del

      상대해 달라고 한 적 없어요.
      할 말만 한다고 했지...

    • 야만인 2018.01.14 20:58 신고  Addr Edit/Del

      남의 블로그에 댓글 달면서 할말만 한다는거 무례하고 천박한 짓이랍니다 블로그는 소통공간 이전에 개인공간이고
      자기 할말만 하고 싶으면 본인 블로그 만들어서 하세요
      객관과 자의적 해석을 지양하는 분이 역사학자들은 한자모른다는 당신 편견, 일반화의 오류나 떠벌리고 있으십니까

      진인파던 입공우던 도해파던 일본이나 중국이 조작하고 해서 건드렸다고 믿는 분이 객관을 가지고 있으신가 내 입맛에 안 맞는게 주관이지 어째 객관입니까 본인들 주장이 설득력 없다는걸 무의식적으로 느끼니 객관을 붙이는거라 저는 주관적으로 느껴봅니다

      역사학자는 어찌됬든 한자모른다고 모욕을 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야 본인 주장이 정당성을 얻는다고 여기는 거 부터가 유치한 노릇입니다 하도 비전문 비전문 거리기에
      본인들은 어떤 역사학에 전문 전공 인지 부터 밝혀주길 바랍니다

  18. 호치 2018.01.14 20: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왜가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는다는 以爲臣民(이위신민) 문장이 맞는다고 해석한다면 다음 문장인 영락 6년에 고구려의 백제 정벌의 이유 당위성이 결여되고 백제 정벌의 이유와 상관없는 백제 신라의 이위신민 내용과 문맥구조상 제대로 연결이 안되는등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문맥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왜가 전쟁으로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는다는 이위신민 문장과 고구려의 영락 6년 정벌의 문장과 서로 연결되려면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은 왜에
    대한 고구려의 응징 정벌 내용으로
    영락 6년 병 신 년 내용을 서술해야 되는데

    백제를 신민으로 삼은 가해자인 왜를
    응징하지 않고 피해자인 백제를
    정벌한다는 해석 내용은
    개연성과 문맥이 심하게 결여된
    문장 내용이 될수밖에 없지요

    이(以)자는 농사 기구인 쟁기로 밭을 간다는 의미가 담긴 써 이자로 즉 은유적인 표현 성격이 강한 문자이지요 즉 까닭 이유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하여 함으로서라는 의미가 여러가지 의미 사용 가능함으로 문법상 하여 함으로서는 주역 주체가 어떤 대상을 목적으 맘대로 동작하여 대응 처리하겠다는 의미가 강한 낱말들로

    왜가 주어가 된다면 以써 이자의 문맥 연결 대상이 될수가 없고 왜가 신묘년의 주체가 된다는 주장이 성립될수가 없습니다

    신묘년의 정벌 대상은 써 이(以)자가 가리키는 대상 국가로 가리키는게 문법상 맞는 법이지요

    그럼으로 도해파의 주어는 왜가 될수 없습니다 일본측의 아전인수씩 문장 해석일 뿐이죠 객관적인 문법을 위배해가며 구성한
    억지 해석일 뿐이지요

    以 써 이자의 의미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게 일본측의 신묘년 왜 주어 해석입니다

    • ㅐㅐ 2018.01.14 20:31 신고  Addr Edit/Del

      본인도 以爲를 '~여기다' 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걸 보니, "신민 삼았다"고 단정한 해석이 그렇게 확실한 건 아닌 걸 알았겠죠.

      爲 다음 직책이 오면 "~삼다"가 정 해석일텐데, 爲는 "~되다" 以는 "강조" 라니.... 정말 역사학자들의 한문 실력은 인정할 수가 없네요.

    • 야만인 2018.01.14 21:16 신고  Addr Edit/Del

      아미-호치야 얼굴이 철면피구나 ㅋㅋㅋㅋㅋㅋ 아직 그러고 있냐 기랑님이 비전문적 주장한다면서 기랑님 다리 붙잡고 개처럼 허리 스윙을 하고 있느냐 아미 호치 닉네임 바꿔가면서 기랑님이 역사학자 아니라고 여론전 벌린거 부터 해명해 보거라 전문성 따지고 한자 해석 따지기 전에 비열한 술수 부린거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거라

      도해파가 안보인다 진인파이던 인파이던 입공우던 어느것이 원형이라고 생각 하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해석을 곁들려 주려므나 호치-아미상아

      위에 쭈르륵 남겨진 댓글이나 지우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굴거라

      너는 기랑님과 논쟁이나 소통을 하러 온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 블로그 주인장을 흠집내러 온것이잖아 그러니 저런 마운팅을 시전하고 곤조를 부리는 것이겠지

      '그리고 한자에 무식한 미국이
      대왕비 연구하면 그게 얼마나
      전문적인 정확한 연구가 되겠냐 '

      미국인이라서 한자에 무식하다는 무식하고 천박한 소리나 더 이상 꺼내지 말거라 미국과 미국인 학자 학문과 국가를 동일시 하는 오류란다 한국사람이 영문학을 공부하고 불어 독어 공부를 하는건 무식자의 발버둥이더냐 ㅋㅋㅋㅋㅋ 학문이 태생적 신체 기관이더냐 ㅋㅋㅋㅋ 타고남에 따라 전문 비전문 무식과 유식이 나눠지게 ㅋㄱㅋㅋ 배우고 익히면 날로 발전하는 것이 배움일진저 촘스키는 언어학연구를 괜시리 하였구나 아미-호치상아 찌질한 발버둥과 병기의 잡설을 보고와서 사이비 유사역사적 주장을 선동하지 말거라 증거와 근거를 들고오는 객관은 1도 없으면서 말이다 비루한 망아지 같은 위인아 훠이 훠이

  19. 한문 문법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초딩 수준의 아무말 대잔치를 끝도 없이 펼치고 있네요. 이후 저들의 말은 그냥 공해로 간주하고, 블로그 주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차단하든지 삭제하겠습니다. 이들의 무지와 분탕질은 지금까지의 글만으로 충분히 증명됩니다.

    다른 분들도 상대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삭제 과정에서 다른 분들이 단 덧글들이 함께 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 야만인 2018.01.14 23:27 신고  Addr Edit/Del

      닉네임 분간되게 캡쳐 떠 놓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도 이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포스팅 매번 잘보고 갑니다

  20. 대마왕 2018.01.21 09:59 신고  Addr Edit/Del Reply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식적으로 2005년에 나온 이 주장이 왜 학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 방송이라면 생각하고 방송을 해야지요. 내가 글쓰다가 막혀서 그렇다가 말이 됩니까? 이 방송은 이제 귀면와가 치우의 형상이라는 검증 안된 주장까지 하더군요. 명쾌한 해석에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21. 서예하는 2018.02.03 10:02 신고  Addr Edit/Del Reply

    일단 역사를 배제하고 저도 서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入貢于에 대한 역사적 기록도 중요하지만, 일단 본 강연자가 말했듯이 서예도 하나의 미술분야이기 때문에 획 하나하나가 예술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석을 새기는 장인의 육감과 미적감각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미술의 도상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광개토대왕의 글씨체와 渡海波의 글씨체는 이전의 광개토대왕 원본 글씨체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본 강연자의 내용을 100프로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서 미세한 차이라는 우선 변조하려고 맘을 먹은 사람이 되도록이면 이전의 원본체와 가장 흡사하게 새길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차이가 있는것는것이다.

    본 필자가 글씨의 삐뚤어짐과 원본에서 조차 약간의 글씨체에서 보여지는 차이는 우선 비문을 새기는 장인(고구려 사람)이 1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일단 새기는 장인은 우수한 사람이였을 것이고, 그 시대상에 맞는 글씨체를 충분히 숙달하고 임하였을것이다.

    따라서 그런 과정속에서의 차이와 몇 천년후의 일본인이 사람들의 글새김은 아무리 유사하게 새긴다고 하여도 시대성에 따른 느낌을 줄수 밖에 없다.
    이는 회화를 그릴 때 극명하게 들어난다. 그림을 최대한 모사(똑같이 그리는것)한다 하더하도 원작자는 회화의 유연성과 자유로움이 드러나는 반면 모사자는 본의 아니게 필력이 둔탁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머무름이 많다.

    방송에서 그러한 예를들어 일본이 그당시에 자주 사용하였던 명조체를 들었는데, 이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가령 명조체가 아니더라도 서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느낌이 다른것이 맞다.
    이는 서예를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육감적인 부분이지만 사실이 육감을 역사적 사료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본 강연자는 서예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필자가 말한 역사적 사료가 만약 변질 되었다면, 서예의 미적감각을 통해 해석할 수 밖에없는 문제를 담고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