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kirang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8.01.07 16:48 역사 노트

  2018년 1월 3일 JTBC의 교양 프로그램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을 다루었다. 강연자는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이자 서예가인 김병기였다. 김병기는 시종일관 광개토왕비가 일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본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강연을 진행하였고, 그가 하는 주장들은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의 과장된 리액션을 통해 놀라운 탁견, 셜록 홈즈가 하는 기가 막힌 추리인양 연출되었다. 인터넷 반응을 보니 방송 내용을 좋게 보는 시청자들도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보며 전공자로서 화가 많이 났다.


  광개토왕비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연구사 정리만도 굉장한 품이 들 만큼 100년 이상 수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연구를 수행하였다.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이 제기된 것은 1972년 재일 학자 이진희에 의해서였다. 그는 광개토왕비 탁본에 따라 글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문제 삼았고, 20세기 초 일본의 육군 참모부가 광개토왕비의 일부 글자에 대해 석회 도포 작전을 수행하여 의도적으로 비문 내용을 변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학계에 무척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진희의 주장은 1980년대 들어 중국 학자 왕건군()의 연구를 통해 해명되었다. 왕건군은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에 장기간 머무르며 비를 상세히 조사하는 한편, 비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상세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광개토왕비에 칠해져 있는 석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입수되었다. 왕건군의 조사에 따르면 비에 석회를 칠한 이는 일본 육군 참모부가 아니라 광개토왕비 근처에 살고 있던 초씨 성을 가진 중국인 부자(父子)였다.

  이들은 광개토왕비 부근에 거주하며 탁본을 떠서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광개토왕비는 매끈하게 다듬은 비석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외형을 가진 비였기 때문에 탁본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풍화가 이루어진 데다가 발견 직후 비를 뒤덮고 있는 넝쿨과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비에 불을 지르는 과정에서 불길의 온도를 이기지 못한 표면이 갈라지고 깨지는 등 많은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역시 좋은 탁본을 얻는 데 장애가 되었다. 

  이에 초씨 부자는 탁본을 쉽게 뜨기 위하여 울퉁불퉁한 비 표면에 석회를 발라 다듬었다. 흐릿한 글자들의 윤곽을 보다 뚜렷하게 보이도록 손을 대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글자가 엉뚱한 글자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원래의 비문에 왜곡이 가해진 셈이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석회 탁본'은 그전에 만들어진 탁본들보다 글씨가 선명하고 깨끗하여 탁본 구매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꽤 오랫동안 탁본업에 종사하던 초씨 부자는 나중에 이 일을 그만 두고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왕건군이 조사를 할 당시 마을에는 초씨 부자와 잘 알고 지냈던 이웃들과 일가친척이 아직 거주하고 있었다. 왕건군은 그들의 증언을 통해 광개토왕비에 석회칠을 한 초씨 부자의 행위 전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장 조사에 근거한 왕건군의 연구로 인하여 일본 육군 참모부가 석회도포 작전을 통해 광개토왕비문을 변조하였다는 이진희의 주장은 논파되었다. 하지만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탁본의 사료적 가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이에 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지기 전에 제작된 탁본들이었다. 이를 '원석 탁본'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석 탁본의 수는 10여 개에 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즈타니본, 가네코본, 부사년본, 북경대 소장본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원석 탁본이 존재하는데 임창순본과 최근 조사된 혜정본이 원석 탁본이다.

  역사학자들은 원석 탁본을 통해 비문의 재판독을 시도하였다. 석회칠로 왜곡되지 않은 원형의 텍스트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몇몇 글자들의 왜곡을 바로잡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광개토왕비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묘년 조'의 판독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일본 육군 참모부의 석회 조작설을 믿었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원석 탁본에서도 해당 글자들은 기존의 판독문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원석 탁본에 대한 면밀한 조사 이후 광개토왕비문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판독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에서, 이 텍스트를 어떤 맥락에서 읽어내야 하는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견해는 광개토왕비문을 독해할 때 비를 세운 5세기 고구려인들의 의도와 욕망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비의 목적은 광개토왕의 훈적을 과시하는 데 있으므로, 고구려인들에게는 이를 돋보이기 위한 서사가 중요하였다. 광개토왕의 업적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가 무찌른 적이 허약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여야 좋다. 이에 주목한 것이 '악역'으로 설정된 '왜'의 존재이다. 고구려인들은 광개토왕비에 '왜가 원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와 신라를 공격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장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광개토왕이 벌인 정복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왜를 강대한 세력으로 과장해 묘사하여 광개토왕의 무훈 또한 더욱 빛나게 연출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재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 학계조차 더이상 광개토왕비 신묘년조 기사를 통해 임나일본부를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김병기의 강연을 들으며 화가 났던 것은 이러한 역사학계의 연구사가 깡그리 무시되었다는 데 있다. 김병기의 사고는 여전히 70~80년대 횡행하였던 낡은 문제의식의 틀에 머물러 있다. 신묘년 조 판독을 일본이 처음 제시한 판독과 다르게 해야만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이 부분이다. 김병기 개인이야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2018년에 방영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30~40년 전에나 횡행하던 낡디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김병기는 석회로 인한 비문 변조설을 넘어서 일본이 원석 자체를 변조하였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하지만 그 근거라는 것이 참으로 박약하다. 우선 본인이 광개토왕비 탁본 글씨를 구해서 그것을 따라 쓰다가 보니 '콱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변조된 부분이더라 라는 이야기. 그는 이것을 서예가로서의 육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기가 콱 막힌'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무슨 학문을 육감으로 하나.

  김병기가 비문 변조를 문제 삼는 부분은 그 유명한 신묘년 조 문장이다. 광개토왕비 1면 9째줄에 있는 문장으로, 그 내용은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소개한 대로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은 이 문장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깨뜨렸다"는 '도해파(渡海破)' 부분이 변조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변조되기 전의 원래 글자까지 제시하였는데, 그가 제시한 변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에 따르면 '도해파(渡海破)'는 원래 '입공우(入貢于)'였고, 이렇게 복원한 글자로 문장을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入貢于百殘□□新羅 以爲臣民". 김병기의 해석은 이러하다.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었다. 그렌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가야와 신라에게 조공을 들여놨으므로 (고구려가) 일본을 신민으로 삼아줬다.". 대단하다! 글자 몇 개 바꾼 것만으로 내용을 반전시켜 일본이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더 나아가 고구려의 지배를 받는 신민으로까지 만들어 버렸다.

  방송에서 이 김병기가 이 해석을 제시하는 장면은 웅장한 BGM이 은은하게 깔리고, 패널들은 박수를 치는 형식으로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널들의 발언. "(딘딘)우와, 멋있다.", "(홍진경)만약에 이게 진짜라면 진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거네요." 하지만 패널들과 달리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뒷목을 잡았다. 이건 철저하게 김병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은' 판독이다. 세상에 자기 입맛대로 획을 넣고 빼고 하면서 읽는 판독이 어디에 있나.

  김병기는 자신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게 서예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시하는 게 획의 수평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광개토왕비의 서체는 가로 세로 획이 일관되게 수평-수직을 모습을 보이는데, '조작된' 부분의 글씨는 오른쪽이 살짝 들려 있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인들이 근대에 들어와 명나라 서체를 참조해 만든 '명조체'의 흔적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광개토왕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비와 달리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가 아니다. 비신에 부정형의 굴곡이 많이 있으며, 석재 역시 입자가 거친 응회암이다. 똑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글씨가 새겨진 부위의 굴곡에 따라 획의 각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탁본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울퉁불퉁 골곡이 있는 광개토왕비의 비신 모습

  또 방송 상에서 보면 그는 글자의 대조를 할 때 '석회 탁본'을 사용하고 있다. 석회 탁본으로 글자를 대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광개토왕비에서 석회가 칠해진 부분은 신묘년조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광개토왕비에 석회를 칠한 것은 부근에 살며 탁본 장사를 하던 초씨 부자였다. 그들이 석회를 칠한 목적은 '역사 왜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탁본의 편이성을 확보하고, '예쁘고 잘 팔리는 탁본'을 생산하는 데 있었다. 때문에 신묘년조 뿐만 아니라 울퉁불퉁한 비의 표면 전체에 석회를 칠하였다. 즉, 김병기가 방송에서 보여준 비교 작업은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와 또 다른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들을 비교 대조하는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비면 전체에 석회칠이 되어 있는 광개토왕비의 모습

  김병기는 글자 조작의 또 다른 증거로 글자가 서로 줄이 맞지 않고 비뚤어져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앞서 말한 대로 광개토왕비의 비신 형태가 심하게 굴곡이 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의미가 없는 소리이다. 게다가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코오 가게노부의 묵수곽전본을 예시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은 애초에 제대로 된 탁본이 아니다. 글씨 형태에 맞추어 윤곽선을 그리고 나서 바깥 부분에 시커멓게 먹물을 칠한 '유사 탁본'이다. 그나마도 조각조각난 종이들을 맞추어 조립한 것이다. 김병기는 사코오본에서 '도(渡)'는 오른쪽으로, '해(海)'는 왼쪽으로 쏠려 있는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글씨가 조작된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코오본에서 다른 글자들은 다 줄에 맞추어 글씨가 배열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을 보면 확실히 신묘년 조(빨간색 박스)에서 '도'는 오른쪽으로 , '해'는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옆의 글자들(노란색 박스)를 보라. '도'의 오른쪽에 있는 두 글자도 일관되게 오른쪽으로 쏠려 있고, '해'의 오른쪽의 세 글자는 일관되게 왼쪽으로 쏠려 있다. 김병기의 주장과 달리 줄이 안 맞는 현상은 다른 글자들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근처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글자들이 한꺼번에 한쪽으로 쏠리는 등 일관된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글자가 치우쳐진 현상은 조작 때문이라 볼 수 없다. 비신 표면의 굴곡 문제이거나, 탁본 자체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김병기는 자신의 주장이 서예학적인 접근의 결과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입공우'라는 판독은 너무나 무리한 주장,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세번째 글자, '파(破)'가 원래는 '우(于)'였다는 그의 주장을 한번 검토해 보자.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다른 '우(于)'가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여 '파(破)'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우(于)'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광개토왕비에는 다른 곳에 '우(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것을 통해 김병기가 얼마나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왼쪽 빨간 박스(A)가 신묘년조의 '도해파(渡海破)'에서 '파'에 해당하는 글자이며, 오른쪽 빨간 박스(B)는 '우(于)'이다. 김병기는 '파(破)'에서 왼쪽 부수인 '석(石)' 부분이 조작되어 붙은 것이라 하였고, 원래 '우(于)'였던 글자에서 첫번째 가로 획을 지우고 그 밑에 일부 획을 추가하는 식으로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 A의 원래 '우(于)'는 크기가 매우 작은 글씨로 상정해야 한다. 또한 오른쪽으로 매우 쏠려 있었던 형태로 이해하여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궁색한 자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B를 보면 광개토왕비에서 '우(于)'는 크기도 클뿐 아니라 정사각형 공간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병기는 본래 서예가이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광개토왕비의 글씨가 멋지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정작 '入貢于'라는 본인의 엉뚱한 추정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광개토왕비의 글씨를 아주 졸렬한 형태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신묘년조 문장에서 '파(破)'가 원래 '우(于)'였을 것이라는 김병기의 주장은 그냥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김병기가 지나가듯이 한번 언급하고 말았지만 광개토왕비문 연구에서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뜬 원석 탁본은 매우 중요하다. 방송에서는 마치 일본인들이 처음 광개토왕비를 발견했다는 듯이 다루었지만, 실제로 광개토왕비를 발견한 것은 중국인들이었고, 처음 탁본을 뜨기 시작한 것도 중국인들이었다. 집안 지역에서 오래된 고비가 새롭게 발견되자 북경 등지의 서예 감상가와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고, 그 결과 북경의 유명한 탁본가들이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을 며칠 씩 방문하여 탁본을 떠가게 되었다. 나중에 탁본업에 종사하게 된 초씨 부자는 원래 이들을 안내하는 이들이었으나, 어깨 너머로 탁본 제작법을 배우고 나서 급기야 탁본업자로 직업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원석 탁본에서는 해당 글자들이 어떻게 보일까.

 

(*추기 : 가네코본, 미즈타니본, 부사년본이 원석탁본임을 믿을 수 없으며, 임창순본과 혜정본만 원석탁본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심병 가진 사람이 있어 임창순본과 혜정본도 추가적으로 공개한다. 물론 이걸 보고도 안 믿을 테지만.)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원석 탁본에서는 두 번째 글자인 '해(海)'가 잘 안 보인다. 이 부분의 비신에 크랙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자들 중에서 '해(海)'를 판독불능자로 처리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왼쪽에 물 수변을 인정하지 않고 '매양 매(每)'로 판독하기도 하며, 남아 있는 몇 개의 자획과 전체 문장의 맥락을 감안하여 '해(海)'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나머지 글자들은 획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병기가 광개토왕비는 석회가 칠해지기 전인 원석 단계부터 이미 조작이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석 탁본의 글자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 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탁본은 일본인들에 앞서 중국인들에 의해서 이미 제작되고 있었고, 사코오가 광개토왕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묵수곽전본을 구한 것은 나중 일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 중국인들이 제작한 광개토왕비 탁본의 글자들은 모두 일관되게 위와 같은 자형으로 판독되고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광개토왕비의 원래 글자가 맞다고 판단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를 끝내 부정하는 것은 '일본이 분명 비문을 조작하였을 것'이라는 최초의 선입관이 합리적인 사고 흐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기의 주장처럼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석회를 조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 석회칠은 글자의 획을 지우거나 새로 만드는 게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있는 글자에 새로 획을 추가해 새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획들은 어떻게 지운다는 것인가. 탁본에 보이는 획은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있는 획을 없애려면 돌에 새겨져 있는 획을 메꾸어 채워야 한다. 원석에서 그러한 작업을 어떻게 하였다는 것일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도 원석 단계에서 글자가 조작되었다는 김병기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탁본업에 종사하던 중국의 초씨 부자는 비면에 석회를 칠한 행위로 광개토왕비를 훼손하고 후대 연구에도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들에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손님들이 좋아하는 깨끗해 보이는 탁본을 떠 팔기 위해서 석회를 발랐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이들의 무지는 결과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큰 해가 되었다. 나는 "차이나는 클라스"가 석회 탁본을 만들어 팔았던 초씨 부자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지식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게 적당히 가공하여 방송하는 것이 과연 교양 프로그램의 본령과 어울리는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추가*

  자꾸 내 블로그에 찾아와 김병기의 방식이 과학적라고 떠드는 분이 있어서 포토샵을 이용해 김병기가 원래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형태로 복원해 보았다(위가야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참고하여 포샵질을 해 본 것이다). 자, 한번 이 모습을 '과학적'이고, '서예학적'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참고로 위가야 선생은 만약 당시 고구려 석공이 이런 식으로 글씨를 새겼다가는 목이 날아갔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posted by 기랑 kir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물리 2018.05.22 05:05 신고  Addr Edit/Del Reply

    ㅉㅉ!
    물리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하고 싶은것은
    돌의 굴곡이 있을때 석공들은 어떻게 글씨를 새겨 넣는지 , 그것을 탁본으로 뜨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같은 가장 기초적 연구 즉 석공과 서예가 그리고 그것을 탁본 뜨는 사람등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하기를 권합니다.

    • 기랑 kirang 2018.05.23 21:28 신고  Addr Edit/Del

      그런 거 한다고 해서 없는 글자 나타나지 않습니다.

    • 플리스덴 2018.05.31 21:58 신고  Addr Edit/Del

      검증 연구를 해보지 않고서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 단정하는 자체가 문제이지요

      대왕비 건립 당시 고구려 석공의 글씨 조각기술이 어떤한지를 글씨체를 분석하는 것 외에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검증은 대왕비 실물 판독을 하는 것이지만 그 나마 석회로 변형 훼손된 터라 대왕비 원문들이 그로 인해 사라져서 연구가 어렵다는 점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2 10:13 신고  Addr Edit/Del

      무얼 검증 안 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석회 칠해지기 전에 뜬 많은 원석 탁본에 대해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졌습니다.

      검증이 덜 되었다 생각하시면 본인이 한번 검증해 보시고 논문으로 쓰십시오. 그러면 그 검증 결과물을 학술적으로 검증해 드리겠습니다.

    • 플리스덴 2018.06.02 13:16 신고  Addr Edit/Del

      대왕비 실물 사진자료로 통한 신묘년 글씨체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혜정본 같은 원석탁본은 모양이 희미하고
      애매하여 원석탁본의 글자가 어떤 모양인지 100% 정확하게 판독안된 상태입니다

      자신이 제시한 혜정본의 글자 내용을
      제대로 보십시오 얼마나 훼손 심하여
      알아보기가 힘든지 그렇게 알아보기 힘든 것을 어떤 특정한 글자라고 단정짓는거 비약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4 17:53 신고  Addr Edit/Del

      그 단정은 보통 '조작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하곤 하지요. 그냥 사심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판독하면 됩니다.

    • 플리스덴 2018.06.04 20:38 신고  Addr Edit/Del

      일본측의 신묘년 도해파 해석을 맹신하는 분들의 단정도 거기 못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실증적 눈으로 판독하면 될것이지요

    • 태연 2018.08.27 15:32 신고  Addr Edit/Del

      물리학 전공자의 정당한 제기에 기경량 답글 클라스 보소ㅋㅋ

    • 태연 2018.08.27 15:34 신고  Addr Edit/Del

      사심없이=우리의 밥그릇을 건들지 말고 ok

      이미 일본놈들이 100년전에 탁본뜬 그대로 보고 해석하고 보면된다 이 논리네, 이게 논리냐?

  3. 오호 2018.05.26 09:13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문가의 권위를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4. 한국인 2018.05.28 01:49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길게 설명하시느라 수고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인 저도 방송을 보고 어느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비석이 훼손되었고 실물을 직접 조사하는 게 다소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어 이 지식에 관하여 마침표는 찍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볼 수 있는 글이 있어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마침표는 찍지 않고 하나의 과정중에 있는 지식으로 가지고 있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김병기 서예가께서도 반론에 대해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고 바뀔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의견을 내신 것이니
    이걸 받아들이는 것은 시청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필자께서는 지식의 오류를 우려하시는 것이겠지만 이또한 과정이 아닐런지요
    아직은 명확한 답을 낼 수 있는 때는 아닌 것 같아 좀 더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잘 보고 갑니다 ^^

    • 기랑 kirang 2018.05.29 12:13 신고  Addr Edit/Del

      한국인/ 서둘러 마침표를 찍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주장을 두루 접하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시면 됩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접한 채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쪽이지요. 제 글이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드렸다면 다행입니다.

  5. 잘보고 갑니다 2018.05.30 21:57 신고  Addr Edit/Del Reply

    솔직히 국뽕 주장 맘에 들진 않지만 표현의 자유는 있겠죠. 근데 그걸 방송에서 교차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방영한 부분은 좀 씁쓸하더군요. JTBC라 좀 더 아쉬운 부분. 역사란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될텐데 말이죠. 전세계 어느 학자가 그 굴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만은 한중일은 유독 특히 고대사에서 민족주의적 관점이 심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작 200여년 역사의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인게 작금의 현실인데 말이죠.

    • 23 2018.05.31 22:01 신고  Addr Edit/Del

      역사는 탈민족주의 민족주의 이런 이분법적인 주관적인 프레임으로 진실추구하는게 아니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주의라는 관점에서 진실 추구하는 것이지요 탈민족주의도 알고 보면 편향된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합니다

      탈민족주의에 유리한 진실이든 민족주의에 유리한 진실이든 그걸 가리지 않고 진실추구하는게 역사학의 기본 소임이지요

  6. 미스터선 2018.06.19 11:34 신고  Addr Edit/Del Reply

    솔직히 이건 차클 흑역사 맞음ㅋㅋ

  7. 잘 읽었습니다 2018.07.04 23:11 신고  Addr Edit/Del Reply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얘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을 본인 인생이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나 일본의 광개토왕비 조작설 같은 것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기원해봅니다. 역사는 사실을 추구해야 하지 내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역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댓글들 읽어보니 역사에서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과정을 끼워맞추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 기랑 kirang 2018.07.05 11:40 신고  Addr Edit/Del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23 2018.08.20 20:38 신고  Addr Edit/Del

      소통 운운하기 전에 기초적인 객관적 상식과 근거부터 갖추고 소통 운운해야 되지 않을까요

      광개토대왕비 같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자료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당대성 객관성 정확성 자연성 등 이런 구성 요건들이 많이 결여되어 이런 문제 많은 자료가 조작 의혹에 휩싸이는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런 자연스런 논쟁 규명을 무슨 특정 사관의 시각으로 이상한 생트집이라고 폄하하여 학문의 기본 진리와 거리가 먼 작태를 보이니까 문제이지요

      역사는 객관적 근거에 의해 규명되어야할 학문이지 주관적인 조작 자료에 의존하여 구성되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려 주고 싶네요

    • 기랑 kirang 2018.08.20 22:56 신고  Addr Edit/Del

      23/ 그러니까 말입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백잔(百殘)'이 무슨 의미인지는 공부해 오셨습니까?

    • 태연 2018.08.27 15:28 신고  Addr Edit/Del

      그 놈의 백잔은 엄청 물고 늘어지네, 궁금하면 스스로 찾아봐, 동문서답이 학자가 할 일인가? 이게 소통인가?

  8. 오모리 2018.08.25 09:02 신고  Addr Edit/Del Reply

    23/ 광개토왕비 전체 내용에서 백잔(백제)가 결코 왜에 의한 '피해자'로만 규정되지 않죠. 그 피해자가 왜 영락 8년인가 9년조에는 왜와 통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을까요. 비문을 23님 본인이 보고 싶은 구도대로만 해석하니 앞뒤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지요. 23님처럼 보면 왜는 일본학자들의 주장대로 정말 한반도 남부에서 종횡무진했던 강력한 세력이 되는 것이구요. 실제로는 백제가 고구려에 대한 대항전을 주도했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입니다. 손바닥만한 지식으로 아는 척 좀 고만하시죠. 아니면 토론에 제대로 응하시든가.

    • 태연 2018.08.27 15:48 신고  Addr Edit/Del

      왜가 백제를 칠 이유도 없고 기록도 없다. 생전 왜가 백제를 공격했다는 사료를 듣도 보도 못했는데 무슨 근거로 왜가 백제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고 하는건가?

    • 가전 2018.09.11 18:34 신고  Addr Edit/Del

      오모리 / 논란의 핵심 요점을 이해못하는 모양인데 대왕비 논쟁의 핵심 요점은 신묘년 기사에 일본측의 해석 내용 맞냐 틀리냐가 관건이지요 무슨 쌩뚱맞게 백제가 왜와 화통했다는 영락 9년의 기사를 들먹여서 신묘년 논쟁의 본질을 흐리나요

      백잔이 왜와 화통했다는 영락 9년의 기록이 신묘년조의 일본측 해석 내용의 신빙성을 치켜세울만한 내용이라도 되는가

      신묘년조의 내용은 비문 줄거리에서 전개될 광개토태왕의 남방 정벌의 서막을 여는 내용이라 백제 정벌 배경과 직결된 내용이라 논란이 될수밖에 없지

      영락 9년의 백제의 왜 화통 내용은 나중의 일이고

      문제는 신묘년 이전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원수될만한 짓을 했다는 내용이 존재했는냐가 관건인데 일본측 신묘년 해석 내용에 의하면 백제는 본래부터 고구려의 원수였다는 내용은 없고 고구려와 같은 민족을 의미하는 속민이라고 백제를 그렇게 기록될 정도로

      백제를 가해자로 묘사했다는 님의 주장과 얼마나 거리가 먼것인지 아시오

      기초적인 아이큐를 키우고서 제대로 답변하던가 이거 뭐 초딩보다 못한 수준의 엉성한 답변을 듣는 것도 아니고

      신묘년조의 내용은 남방 정벌의 시초를 알려주는 핵심적인 내용인데 신묘년조의 내용에 백제가 고구려와의 전통적 관계에서 속민관계였다는 내용은

      상식적으로 백제가 가해자로 묘사된다는 님의 주장과 거리가 먼 근거 내용이지 일본측 해석 내용을 그렇게 믿으면서 일본측 해석 내용에 나오는 백제 피해자설을 왜 그렇게 부정하는가

  9. 태연 2018.08.27 15:26 신고  Addr Edit/Del Reply

    나는 이 블로그를 우연히 검색하다가 알게되어 방문하였는데, 이 기경량이라는 인간의 언변을 여기서 보아하니, 그 도량의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너희같은 친일매국역사학 추종 전공자들과 뭔가 토론은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어디 무슨 말을 하나 보자, 어떤 해석이 있기에 JTBC에서 불렀는지, 방송이 차마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지 알고자 왔는데 글들이 죄다 어떤 한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로서의 소견이 아닌, 소위 패거리주의, 국사학과 카르텔에 입각한, 그저 자신의 숙주세력에 잘보이기 위한 몸부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친일매국세력과 얼마나 같이 명맥을 유지할지는 모르겠다만 분명히 알아둬라,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것만이 매국이 아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네 실없는 소리들이 어리석은 대중과 연예인들이 현혹되어 그나마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의 실체조차 혼란스러워 하고 나아가 마음속에서부터 영혼이 쪼그라든 민족으로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곡 과장하여 국수주의적인 역사관으로 재정립하자는게 아니다. 최소한 너희들이 그리도 추종하는 100년전 조선사편수회 중심의 역사관은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야 학자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들의 연구에서도 필요한건 갖다 써야겠으나 그런 노력도 없이 적당히 배우고 학위 딴 뒤에는 카르텔의 밥그릇을 수호하는 홍위병이 된 들, 너의 영혼이 과연 우리의 조상님들 앞에 떳떳하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최소한 있는 사료와 유적은 연구해야 할 것 아닌가? 홍산문화유적지는 가보았는가? 발해만과 진황도, 갈석산, 고려 천리장성 지역은 답사했나? 그들이 말하는 동이와 동호가 뭐를 의미하는지 생각은 했나? 아니면 다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건가? 지속된 친일매국식민사학의 전파 행위는 그대가 다 알고서 이런 망언들을 하는거라 믿겠다. 강제징용당하신 외조부님께 천자문을 배우고 유치원때 친일매국역사책부터 시작하여 10대 후반에 이십사서를 떼고 지속적으로 가슴으로부터 우리 나라 역사를 사랑하고 공부해 온 국민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 사기를 치기 바란다.

    • 오모리 2018.08.28 09:20 신고  Addr Edit/Del

      사이비들 특징이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로 호통. 전형적인 꼰대마인드. 남의 글이나 제대로 읽으시죠. 나는 왜가 실제로 백제를 쳤다고 한적 없음. 23에게 비문의 작성 의도를 놓고 얘기한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문맥 파악도 못하는 수준으로 민족사학 함부로 들먹이지 마시오. 정인보, 신채호 선생은 그런 수준으로 남의말 비판한적 없소.

    • 가전 2018.09.11 21:03 신고  Addr Edit/Del

      오모리/ 역사학의 기초도 배우지 못한 무지한 것들이 전문가 보고 사이비 운운하는 꼬락서니가 우습지 않은가요

      상대글도 논리가 있어야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글을 사람의 인지상정으로 무턱대로 받아들여지는줄 아나

      역사 논쟁에서는 글의 논거가 중요하지 그따위 유치한 꼰대주의 타령으로 나대는게 아니다

      상대방과 어떤 테마에 대한 논쟁을 할때 그 테마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논쟁해야지 논쟁의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은 억지라는 것을 아셔야지

  10. 2018.08.29 16: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실제로 왜로 불리던 마한 보라국이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죠. 그리고 보라국 사람들이 포상팔국의 난을 주도하잖아요. 왜가 바라를 건넌다는 것은 보라국이 바다를 건너서 신라를 정벌하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마한 보라국은 3세기 이전까지 어느 나라에도 조공을 하지 않아서 왜로 불리웠죠. 고구려도 마한 보라국이 조공은 커녕 백제를 식민화하고 신라를 공격하며, 황해도까지 침공해오자 이를 왜라 칭하며 공격을 한 것이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석됩니다.

    • 오모리 2018.08.29 17:46 신고  Addr Edit/Del

      재밌네요. 저도 볼테니 사료를 한번 제시해보세요.

    • 가전 2018.09.11 21:07 신고  Addr Edit/Del

      자의적인 해석일뿐 개연성과 구체적 근거가 담겨진 해석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많지요 마한이 왜로 불린다는건 추측일뿐

      대왕비 일본측 자료의 왜는 한반도 세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일본열도 세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내가 식민 사관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지만


      게다가 대왕비 사본 자료의 진위 논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의 일방적 해석자료에 의존해서 너무 깊이 나가는건 문제가 많지요

      일본측의 대왕비 해석 자료에 나온 왜의 실체를 규명하는것 보다 일본측의 해석 자료의 진위 여부부터 규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왜의 실체 규명은 대왕비 해석본의 진위 논쟁이 해결된 뒤에 해도 늦지 않지요

  11. 궁금 2018.10.18 21:15 신고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병기 교수의 주장은 다른 한국사 선생님도 엄청 화를 내시면서 설명하시던데요. 30년 전에 깨진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다고 말이죠. 기경량 교수님 반응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해석 부분이 조금 달라서 질문인데요.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이 문장에서 기경량 교수님은 고구려가 왜의 존재를 과장해서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빛내기 위함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하셨고요. KBS 역사그날에 출연하신 이영식 교수님도 기경량 교수님처럼 해석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한국사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해석하던데 이런 해석도 학계에서 많이 받아들여지나요?

    =======================
    비석에 쓰여진 글은 어떻게 끊어 읽느냐가 중요하다.

    비석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넜다.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깨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여기서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넜다.'는 때의 부사절이고
    전체 주어는 고구려이기 때문에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깨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의 주어는 일본이 아니라 고구려이다.

    당연 주어는 고구려이기 때문에 생략한 거다. 일생생활에서도 주어가 자기 자신이면 생략하는 거처럼...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정인보도 이런 주장을 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강의한 또다른 선생님의 유튜브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NK5puca7GGY

    위의 내용 복사하기가 안 되면
    유튜브에서 '한나 TV 임나 일본부설 반박'을 치면 나오네요.

    유튜브에 나오는 선생님도 주어 생략이라고 보더라고요. (주어 생략이라는 설명은 같지만) 차이가 있다면 유튜브에 나오는 선생님은 도해파 앞에 주어가 고구려이다는 점이 다르긴 하네요.
    ====================


    이런 주장도 학계에서 많이 나오는 건가요?

    위의 선생님들 해석은 김병기 교수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지만 기경량 교수님의 주장과도 조금 다른 거 같아서 질문 드려봅니다.



    • 3 2018.10.28 21:22 신고  Addr Edit/Del

      문제는 정인보 교수와 김병기 교수의 주장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논리적으로 궁색한 답변을 내놓고 과학적으로 김병기 교수의 주장을 분석 반박하지 못하였지요

      30년전에 깨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그 한국사 선생은 광개토대왕비 논쟁 현황을 제대로 체크하고서 얘기 하는가요

      김병기 교수의 서예분석에 따른 대왕비 분석은 왕건군도 하지 못했던 과학적 분석 방법이고

      조작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해석만 즐기지 정확한 해석의 근간을 이루는
      서예 분석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전문적으로 반박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자료 검증에 항상 과학적인 검증 방법이 기본인데 조작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그런 기본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자료는 서예라는 작성기법으로 구성된 한문 중심적 자료들이 대다수라 한문 서예가 중심이 된 당시 자료의 필체 감정에 서예학이 전문적이죠


  12. 궁금/ 말씀하신대로의 끊어읽기가 정인보식 해석입니다. 문제는 이게 굉장히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해석이라는 것이지요. 자의적으로 주어와 목적어를 넣었다 뺐다 하는 방식이라, 설득력이 없습니다. 더구나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신묘년조 기사의 내용이 애초부터 '사실'이 아니라 고구려가 광개토왕의 정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집어 넣은 명분, 즉 과장과 프로파간다라는 해석이 나온 이후부터는 굳이 그렇게 해석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되었지요. 처음 일본 학자들이 해석한 것을 따라가도 어차피 임나일본부설은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학계에서는 이제 정인보식 해석을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전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학계 연구 성과에서 최소 수십 년이 지난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13. 3 2018.10.28 21:35 신고  Addr Edit/Del Reply

    정인보의 해석은 논리적으로 볼때 개연성에 근접한 해석이지요 왜가 백제 신라를 식민으로 삼았다는 일본측 해석은 논리적으로 봤을때 대왕비의 작성 주체가 고구려라는 팩트근거를 망각한 해석인것 같습니다 대왕비는 고구려가 자국의 정복전쟁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국가적 기록인데 그 자료에다 타국인 왜의 전공을 과장하는 내용을 서술한다 자국의 업적을 중점적으로 기록하는 자국측 전쟁기록의 일반적 서술 상식과 동떨어진 주장이고

    대왕의 훈공을 기념하는데 미개한 타국인 왜의 전공을 날조하여 지엄한 군주의 업적 기록에 수록한다는건 군주 국가의 상식을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이지요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정당화 시키려면 백제와 신라를 침략한 왜를 정벌하는 것으로 서술해야 대왕의 업적 정당성이
    개연스럽게 치겨 세월질수가 있는 것이지 업적 선전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왜에 침략당한 피해자들인 백제 신라를 공격한다?

    동서고금의 전쟁 기록 서술의 상식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입니다
    정인보의 해석은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해석입니다

    자국중심적 전쟁 기록에서는 자국을 주어로 삼지 타국을 주어로 삼는 법이 없지요


    • 오모리 2018.10.31 13:10 신고  Addr Edit/Del

      고구려의 자국중심적 전쟁 기록이라고 해서 고구려만을 주어로 삼는다는 건 비문을 다 안 읽어본 사람이나 하는 소리지요. 고구려의 군사행동의 명분이 무엇인지 저술하는 과정에서 적대국이나 동맹국의 행동을 주어로 기술하는게 왜 불가능한가요. 실제로 “영락 9년 기해에 백잔(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하였다.” ; “영락 14년(404년) 갑진에 왜(倭)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대방 지역에 침입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비문을 직접 통독할 능력이 있다면 이 문장들도 고구려 주어로 한번 해석해보고 내용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 오모리 2018.10.31 13:13 신고  Addr Edit/Del

      정인보 선생님의 논리는 비문에 고구려 이외의 주어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신묘년의 전반적인 내용이 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리였음. 그러나 이는 신묘년조 문구 자체를 그 후에 이어지는 고구려의 여러 해에 걸친 군사행동들과 관련한 대전제(대전치문)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제기된 바 있음. 연구 현황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대전치문설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걸 얘기하는게 순리아닌감요.

    • 3 2018.11.02 13:27 신고  Addr Edit/Del

      비문 안읽어본 사람이 고구려 주어 삼는다는 소리는 비문 원문을 제대로 보시고서 하는 소리인가요

      현재 전해지는 비문 내용들은 원본이 아닌
      탁본이나 묵본 같은 해석된 사본에 전해지는 것들이지 그나마 해석한 사본 내용도 작성 주체의 주관적 성향에 따라 객관적이지 못하기에 그런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지

      자신이 믿는 일방적 해석에 의존해서 그런 씩으로 단정적으로 주장하는건 어거지이죠

      그리고 영락 9년과 영락 14년의 내용을 일본측의 신묘년 내용과 동일시 하는 모양인데 영락 9년과 14년은 고구려에 대한 백제와 왜의 불손한 외교 행위를
      서술한 내용이지

      신묘년조에 왜가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는 일본측 해석 내용은 객관적으로 3자인 고구려의 입장에서 볼때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

      자국에 반기를 든 백제와 왜의 영락 9년과 14년의 적대 행위 기록의 성격과 같은 내용이 아닌데

      신묘년 내용과 영락 9년 14년의 내용이
      같은 성격으로 비교해서 왜가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는 신묘년조의 일본측 해석 내용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근거로 삼기에

      견강부회적 비약이지요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영락 9년 14년의 내용과 신묘년조의 내용의 억지로 결부시키려고 하는지

      일본측 해석대로 신묘년조가 자국 고구려에 왜가 직접적으로 적대하고 반기를 드는 내용입니까? 영락 9년과 14년의 내용과 같이 같은 성격의 내용인지

      연도별 기사를 개별적으로 서로 다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일 기준으로 똑같은 잣대로 보니까 그런 억지를 낳는 것이지요






    • 3 2018.11.02 13:29 신고  Addr Edit/Del

      신묘년조의 논쟁의 핵심 성격을 모르고서 하는 얘기인데 신묘년에 백제 신라를 격파한 주체가 고구려 왜 이 둘중 어느쪽이 맞는지가 관건이지

      그렇게도 신묘년 내용 이해못하나요

  14. 3/ 정인보식 끊어읽기가 한문의 문리상으로도 억지스럽고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김병기조차도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광개토왕비문 상 고구려는 신라를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신라가 왜의 침입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도움을 요청하자 구원병을 보내죠. 광개토왕비의 뒷부분까지 다 읽어보세요.

    고구려는 광개토왕비에서 신라는 왜에 피해를 입는 나라, 백제는 왜에 빌붙어 고구려의 천하를 어지럽히는 존재 정도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 3 2018.11.02 20:17 신고  Addr Edit/Del

      정인보 해석의 취지를 모르는 모양인데 정인보의 해석은 대왕비가 고구려가 세운 성격의 자료라는 사실을 감안한 해석이라는 핵심적인 답변 내용을 이해못하나요

      객관적인 문맥 합치 유무를 떠나서
      대왕비 같은 자국 중심적인 훈적 기록에서 타국을 전쟁과 전공의 주역으로 의미하는 주어로 인식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왕의 비문상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한적 없다고 하여 신묘년 왜의 해석을 신뢰하는 근거로 인용하는데

      고구려의 신라 공격 유무를 떠나서 신라가 백제와 같이 고구려의 속민 신하국이었다고 일본측 해석 자료를 비롯한 대왕비 현 자료에 나와 있고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을 하는데 일본측 해석 자료에 왜에 피해를 입는건 신라뿐만 아니라 백제도 왜의 침략 피해를 받는 국가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럼으로 무슨 백제가 왜에 빌붙어
      고구려의 천하를 어지럽힌다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을 하십니까?

      님의 논리대로 왜에 빌붙는 백제는 왜의 침략을 당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왜가 그따위로 분별없는 국가라면
      백제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는다는건 꿈도 꾸지 못할 것이지요

      그리고 백제 신라는 같이 왜에 피해 입으면서 한쪽은 고구려의 원조를 받고 한쪽은 고구려의 침략을 받고 이런 상반된 모습을 나타낸 것을 보면 어떻게 설명하실 것입니까?

      백제 신라가 왜의 침략을 받아 고구려가 침략받은 이들을 구원하고 왜를 응징하기 위해서 신묘년 내용을 썻다면
      왜 이렇게 양쪽에 상반되게 행동하는 것을 서술할수가 있죠
      한쪽은 우호적 다른쪽은 적대적 이렇게 행동하니

  15. 오모리 2018.11.02 19:02 신고  Addr Edit/Del Reply

    3/ “백잔, 신라는 옛부터 고구려 속민(屬民)으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 백잔,(2字缺),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여기 신묘년조에서 왜가 백제.신라를 격파한일이 고구려랑 정말 상관이 없는거 맞습니까? 그 앞에 분명히 원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 신라를 왜가 마음대로 자기 신민으로 삼은 상황인데. 고구려는 제3자의 처지였다고 보는건가요? 그래서 뒤에 영락 6년 이후 이어지는 왜에 대한 고구려의 응징이 정당하다는 서술이라는게 신묘년조=대전치문설의 내용에 포함돼 있는겁니다. 다 알고계신거죠? 이해하고 얘기하시는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본인이 쓴 글을 보세요. "자국중심적 전쟁기록에서 타국을 주어로 삼는법이 없다"면서요. 뭐 그게 본인의 본뜻이 아니라 거칠게 써서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하시죠. 그리고 14년조는 외교행위가 아니라 대방 지역에 대한 군사적 침략행위죠. 본인이 글을 좀 거칠게 쓴다고는 생각 안하시나요? 그리고 탁본 얘기는 무슨소린지. 그럼 본인 판독에 맞게 글자랑 해석을 제시하시던가. 밑도끝도 없이 쓰는군요.

    • 23 2018.11.03 09:52 신고  Addr Edit/Del

      오모리/ 님은 자료 해석과 진실 분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모양인데 자료 해석은 원문을 판독하는 것이고 진실 분석은 자료에 기록된 내용들이 과연 신빙성을 갖고 있는냐 합리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추리력과 다른 사료와의 교차 비교검증으로 그 신빙성 유무를 검증하는것이지

      님은 자료 해석과 진실 분석을 너무 혼동하는것 같습니다

  16. 3 2018.11.02 21:14 신고  Addr Edit/Del Reply

    오모리/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시고서 답변하시지요 신묘년 내용과 영락 9년 14년의 내용의 연결 논쟁 본질을 여전히 이해못하는 모양인데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연합했다는 영락 9년의 구절과 왜가 법도를 어기고 고구려의 영토인 대방 지역을 침략했다는 14년의 내용이 신묘년의 왜의 백제 신라 격파 내용과 성격이 같은 내용으로 연결될수 있냐는 저의 의문제기에 님은 지금 그걸 답변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영락 9년의 내용에 백제(백잔)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연합했다는 구절에서 맹세라는 단어만 보면 고구려로서는 백제가 맹세로 의미되는 자국과의 화친 조약을 어겼다고 서술할 정도로 자국 고구려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내용이고 또한 영락 14년의 내용을 보면 왜가 법도를 어기고
    자국 고구려의 영토인 대방을 침략했을 정도로 직접적으로 적대 행위를 한것이지요

    왜가 속국으로 의미되는 속민인 백제 신라를 공격한 것과 자국 고구려의 직할 영토를 공격한 것과 국가적으로 볼때 영향의 차원이
    같습니까?

    왜가 자국 영토를 공격한건 고구려의 국가적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속국들이 공격받는 것보다 중대한 도발이고
    증오스런 적국이 될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도발을 자행한 왜를 기사를 날조해서라도 정벌하여 소멸시켰다고 서술해야 되는게 정상이지요

    그런데 대왕비에서는 왜에 대한 정벌 기록이 없으니 그럼으로 왜가 신묘년 전쟁의 주역이라고 보기가 어려운게
    바로 이런 대왕비 전체 내용의 앞뒤 중간 맥락의 정황때문이었다는 점을 몇번이나 말해야 하겠나요?

    속국인 백제 신라를 공격한 신묘년의 내용과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고 직할 영토를 공격한 9년 14년의
    내용을 왜 억지로 연관시키려고 하는지

    논리적으로 볼때 고구려가 작성 주체인 대왕비의 성격을 볼때 신묘년의 내용과 영락 9년 14년의 내용이 서로
    동일한 성격으로 비교될수가 있는지

    자국의 직할 영토가 공격받는 것과 속국이 공격받는 것과 충격의 차급력이 같나요
    그런 상식적인 의문으로 생각하면 신묘년과 영락 9년 14년의 비교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인데

    그리고 님이 좋은 답변을 했는데 속민인 백잔 신라를 격파한게 고구려와 상관이 없다고 할수 없다고 하시는데
    고구려에게 상관이 있다면 당장 왜를 정벌했을 것이지요 자신들의 속국을 건드렸는데
    가만히 있을 강대국이 어디 있나요 임진왜란에 명의 파병과 청일전쟁과 청프전쟁도 자신들의 속국을 건드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게 아닙니까? 그런데 대왕비의 왜에 대한 고구려의 대응 묘사는 이런 일반적인 강대국의 모습과 다르지요

    신묘년부터 왜가 자신들의 속국인 백제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는데
    6년까지의 그 기간동안 고구려는
    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니
    도리어 피해받은 속국만 공격하였지요

    자신들의 속국을 건드린 적국과
    전쟁하던 명 청 등 강대국들의
    일반적 대응 태도와 다른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신묘년 직후의 대왕비의 내용들인 영락 6년과 영락 10년 영락 14년 등 대다수의 대왕비 내용들을
    보면 가해자인 왜를 정벌하는 내용들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왜를 응징하는 내용이라면 침략 도발을 강행한 왜의 본거지를 정벌하고 소멸시켜하는게
    정상적인 서술내용이지요

    또한 백제 신라를 괴롭힌 왜를 응징안하고 왜에 괴롭힘을 당한 백제를 공격하고 신라가
    도움을 요청하니까 이해득실로 신라를 도와주는 현실에 따라 움직이는 고구려의 모습이
    정당하게 서술되는 것입니까?

    논리학과 상식이 배인 분이라면 이런 무지한 소릴 못하실 것입니다

    탁본 얘기는 무슨 소리냐고 님은 비문 금석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분 맞습니까
    탁본이 뭔지 알기나 하시나요

    상대방 주장에 억지 반박하려고 이런 무리하고 엉터리적인 비상식적 답변을 하시나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만
    대왕비 내용에 왜를 응징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왜의 침략을 받은 피해국을 공격하거나
    왜의 침략을 받은 피해국의 원조 요청에 응하여 피해국에 침입한 왜를 몰아내고 왜에 자국 영토가 공격받는다는 내용이지

    왜의 영토를 공격하는 능동적으로
    왜를 제재하는 내용은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왜를 응징하는 내용이라면 왜의 영토를
    공격하여 전과를 올리는 것이 기술되어야 정상이죠

    이런 내용도 없고 왜에 피해를 당한 국가를 공격하고 왜에 침략당한 국가를 지원해주는게 왜를 응징하는 내용으로 해석합니까?

    그런 같은 논리로 임진왜란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주었지 일본 본토에 공격한번 해보지 못한 명의 행태가 일본을 응징하는 내용입니까?

    님이 말한 응징의 개념이 뭔줄 알고 계십니까?

    응징은 잘못한 상대를 벌주는게
    개념이지

    왜의 영토를 공격 한번 해보지도 못한게 무슨 응징입니까?




  17. 이거 참...또 아무말 대잔치 시작이시군요. 자판 두드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만 문장 하나하나가 파편적이라 해독이 불가능하네요.

  18. 3 2018.11.03 09:29 신고  Addr Edit/Del Reply

    오모리/일본측 해석 자료에 일방적으로 의존해서 반박하는데 현재 전해지는 대왕비 해석 자료들은 여러 가지가 있고
    일본측 해석 자료는 그중 하나에 불과할뿐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는 절대적인 자료가 아니지요
    한쪽의 일방적 자료 해석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게 그게 제대로된 답변입니까?
    판독에 맞는 글자 해석을 하라고 답변하는데 그럼 님은 객관적인 원문 자료에 입각한
    글자들을 판독하여 해석하실수가 있습니까 있다면 제대로 답변해 보시던지
    그리고 해석을 할때 항상 논리와 상식에 입각해서 해석을 해야지
    논리적 개연성이 떨어지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해석한다고 해석이 되겠나요

    님은 기초부터 다지고서 역사 논쟁에 임하는게 좋겠습니다 수준 낮아서 상대하기도 힘들어가지고 원

    신뢰성 비교에서 신묘년조의 내용과 영락 9년 14년의 내용이 서로 비교될수가 없는게 신묘년조는 일본측 해석대로 왜가 주어라면 왜와 백제 신라의 사이의 일과
    고구려와 백제 왜 사이의 일들이 같은 성격으로 비교될수가 없는 법입니다

    일본측의 신묘년 해석 내용에 왜가 신묘년 전쟁의 주역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에 반해 고구려는 신묘년 전쟁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오지 않는 3자로 묘사되어 비문의 주체인 고구려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으로 된것이 일본측의
    신묘년 해석 내용이라

    신묘년 내용은 영락 6년 영락 9년 10년의 내용과 논리상 연결될수가 없지요
    신묘년 내용의 다음 내용인 영락 6년 백제 정벌의 원인 배경사실을 설명해 주지 않으니까요
    영락 6년 전쟁 기록에서 전쟁의 원인 배경에 관한 사실을 설명해주는 서문 성격에 가까운게 신묘년 내용이라
    왜가 신묘년 기사의 주어라면 영락 6년의 백제 정벌의 원인 배경 설명을 논리적으로 해주지 못하고
    이유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상한 전쟁 기록이 되니까요

    신묘년 논쟁에서 이형구 교수는 신묘년 내용 분석에서 신묘년의 왜(倭) 글자가 본래 글자인 후(後)였다고 밝히 정도였고
    바다를 건넜다는 뜻의 래도해(來渡海) 글자의 원문이 실제로는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불공인(不貢因)이었다고 밝혀서
    이형구 교수의 신묘년 분석대로라면

    신묘년은 조공이라는 외교 문제로 인한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사실을 수록한 내용이 되는 것이라
    영락 6년의 백제 정벌의 원인 배경에 논리적인 설명이 될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럼으로 이형구 교수의 분석이 낳습니다

    신묘년의 왜가 바다 건너서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는건 조작된 글자를 바탕으로 한 일본측의
    자국중심적 해석이라 설득력이라는 건 애초에 거리가 멀었던 성격의 해석 내용입니다



  19. 가전 2018.11.03 20:35 신고  Addr Edit/Del Reply

    일본측이 해석한 대왕비의 신묘년 내용은 고구려의 훈적사실을 중점적으로 서술하는 대왕비의 대다수 내용과는 달리 백제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은 왜의 전공이 강조되어 있고 신묘년 전쟁을 도발한 왜에 대한 고구려의 대응이나 전공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라 고구려 중심주의가 주 성격인 대왕비의 대다수 내용과 다른 성격의 내용이지요 신묘년의 주체인 왜는 해석한 일본의 역사라 일본측이 자국의 옛날 선조들이 관련된 신묘년 내용을 주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럼으로 객관성이 떨어질수밖에 없는게 일본측의 신묘년 해석자료이지요
    게다가 신묘년 여러 글자들중에 서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등 고구려 당대에 작성된 글자인지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신빙성 논란을 초래하였지요
    영락 9년 14년의 내용이 일본측의 신묘년 해석 내용을 뒷받침 해준다고 하지만 그러나 영락 9년 14년 사건의 주역은
    고구려일뿐 왜가 주역인 일본측의 신묘년 묘사 내용과는 성격이 달라서 신묘년 내용을 뒷받침 해주기에 논리적 설득력이
    빈약합니다

  20. 공지/ 본 게시물에 도배성 덧글을 달고 있는 "3, 23, 가전"은 동일 인물입니다. 삭제 처리될 수 있으니, 굳이 댓글을 달 필요는 없습니다.

  21. 오모리 2018.11.06 12:35 신고  Addr Edit/Del Reply

    얼척없는 논리를 본인이 쓰고 본인이 동조하고.. 훌륭하십니다.

    • 23 2018.11.07 18:05 신고  Addr Edit/Del

      얼척없는 논리라는건 그 만큼 님이 얼마나 일반적인 사고관과 거리 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비정상적인 사고관 아주 끝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