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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01.07 16:48 역사 노트

  2018년 1월 3일 JTBC의 교양 프로그램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을 다루었다. 강연자는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이자 서예가인 김병기였다. 김병기는 시종일관 광개토왕비가 일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본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강연을 진행하였고, 그가 하는 주장들은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의 과장된 리액션을 통해 놀라운 탁견, 셜록 홈즈가 하는 기가 막힌 추리인양 연출되었다. 인터넷 반응을 보니 방송 내용을 좋게 보는 시청자들도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방송을 보며 전공자로서 화가 많이 났다.


  광개토왕비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연구사 정리만도 굉장한 품이 들 만큼 100년 이상 수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연구를 수행하였다. 광개토왕비문 변조설이 제기된 것은 1972년 재일 학자 이진희에 의해서였다. 그는 광개토왕비 탁본에 따라 글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문제 삼았고, 20세기 초 일본의 육군 참모부가 광개토왕비의 일부 글자에 대해 석회 도포 작전을 수행하여 의도적으로 비문 내용을 변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학계에 무척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진희의 주장은 1980년대 들어 중국 학자 왕건군()의 연구를 통해 해명되었다. 왕건군은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에 장기간 머무르며 비를 상세히 조사하는 한편, 비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상세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광개토왕비에 칠해져 있는 석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입수되었다. 왕건군의 조사에 따르면 비에 석회를 칠한 이는 일본 육군 참모부가 아니라 광개토왕비 근처에 살고 있던 초씨 성을 가진 중국인 부자(父子)였다.

  이들은 광개토왕비 부근에 거주하며 탁본을 떠서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광개토왕비는 매끈하게 다듬은 비석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외형을 가진 비였기 때문에 탁본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풍화가 이루어진 데다가 발견 직후 비를 뒤덮고 있는 넝쿨과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비에 불을 지르는 과정에서 불길의 온도를 이기지 못한 표면이 갈라지고 깨지는 등 많은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역시 좋은 탁본을 얻는 데 장애가 되었다. 

  이에 초씨 부자는 탁본을 쉽게 뜨기 위하여 울퉁불퉁한 비 표면에 석회를 발라 다듬었다. 흐릿한 글자들의 윤곽을 보다 뚜렷하게 보이도록 손을 대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글자가 엉뚱한 글자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원래의 비문에 왜곡이 가해진 셈이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석회 탁본'은 그전에 만들어진 탁본들보다 글씨가 선명하고 깨끗하여 탁본 구매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꽤 오랫동안 탁본업에 종사하던 초씨 부자는 나중에 이 일을 그만 두고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왕건군이 조사를 할 당시 마을에는 초씨 부자와 잘 알고 지냈던 이웃들과 일가친척이 아직 거주하고 있었다. 왕건군은 그들의 증언을 통해 광개토왕비에 석회칠을 한 초씨 부자의 행위 전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장 조사에 근거한 왕건군의 연구로 인하여 일본 육군 참모부가 석회도포 작전을 통해 광개토왕비문을 변조하였다는 이진희의 주장은 논파되었다. 하지만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진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탁본의 사료적 가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이에 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광개토왕비에 석회가 칠해지기 전에 제작된 탁본들이었다. 이를 '원석 탁본'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석 탁본의 수는 10여 개에 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즈타니본, 가네코본, 부사년본, 북경대 소장본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원석 탁본이 존재하는데 임창순본과 최근 조사된 혜정본이 원석 탁본이다.

  역사학자들은 원석 탁본을 통해 비문의 재판독을 시도하였다. 석회칠로 왜곡되지 않은 원형의 텍스트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몇몇 글자들의 왜곡을 바로잡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광개토왕비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묘년 조'의 판독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일본 육군 참모부의 석회 조작설을 믿었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원석 탁본에서도 해당 글자들은 기존의 판독문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원석 탁본에 대한 면밀한 조사 이후 광개토왕비문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판독 논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에서, 이 텍스트를 어떤 맥락에서 읽어내야 하는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최근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견해는 광개토왕비문을 독해할 때 비를 세운 5세기 고구려인들의 의도와 욕망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비의 목적은 광개토왕의 훈적을 과시하는 데 있으므로, 고구려인들에게는 이를 돋보이기 위한 서사가 중요하였다. 광개토왕의 업적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그가 무찌른 적이 허약해서는 안 된다. 가급적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여야 좋다. 이에 주목한 것이 '악역'으로 설정된 '왜'의 존재이다. 고구려인들은 광개토왕비에 '왜가 원래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백제와 신라를 공격해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장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광개토왕이 벌인 정복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달리 왜를 강대한 세력으로 과장해 묘사하여 광개토왕의 무훈 또한 더욱 빛나게 연출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재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 학계조차 더이상 광개토왕비 신묘년조 기사를 통해 임나일본부를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김병기의 강연을 들으며 화가 났던 것은 이러한 역사학계의 연구사가 깡그리 무시되었다는 데 있다. 김병기의 사고는 여전히 70~80년대 횡행하였던 낡은 문제의식의 틀에 머물러 있다. 신묘년 조 판독을 일본이 처음 제시한 판독과 다르게 해야만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이 부분이다. 김병기 개인이야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2018년에 방영되는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30~40년 전에나 횡행하던 낡디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김병기는 석회로 인한 비문 변조설을 넘어서 일본이 원석 자체를 변조하였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하지만 그 근거라는 것이 참으로 박약하다. 우선 본인이 광개토왕비 탁본 글씨를 구해서 그것을 따라 쓰다가 보니 '콱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변조된 부분이더라 라는 이야기. 그는 이것을 서예가로서의 육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기가 콱 막힌'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무슨 학문을 육감으로 하나.

  김병기가 비문 변조를 문제 삼는 부분은 그 유명한 신묘년 조 문장이다. 광개토왕비 1면 9째줄에 있는 문장으로, 그 내용은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소개한 대로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은 이 문장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깨뜨렸다"는 '도해파(渡海破)' 부분이 변조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변조되기 전의 원래 글자까지 제시하였는데, 그가 제시한 변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김병기의 주장에 따르면 '도해파(渡海破)'는 원래 '입공우(入貢于)'였고, 이렇게 복원한 글자로 문장을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入貢于百殘□□新羅 以爲臣民". 김병기의 해석은 이러하다.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었다. 그렌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가야와 신라에게 조공을 들여놨으므로 (고구려가) 일본을 신민으로 삼아줬다.". 대단하다! 글자 몇 개 바꾼 것만으로 내용을 반전시켜 일본이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더 나아가 고구려의 지배를 받는 신민으로까지 만들어 버렸다.

  방송에서 이 김병기가 이 해석을 제시하는 장면은 웅장한 BGM이 은은하게 깔리고, 패널들은 박수를 치는 형식으로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패널들의 발언. "(딘딘)우와, 멋있다.", "(홍진경)만약에 이게 진짜라면 진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거네요." 하지만 패널들과 달리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뒷목을 잡았다. 이건 철저하게 김병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은' 판독이다. 세상에 자기 입맛대로 획을 넣고 빼고 하면서 읽는 판독이 어디에 있나.

  김병기는 자신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게 서예학적 탐구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제시하는 게 획의 수평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광개토왕비의 서체는 가로 세로 획이 일관되게 수평-수직을 모습을 보이는데, '조작된' 부분의 글씨는 오른쪽이 살짝 들려 있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인들이 근대에 들어와 명나라 서체를 참조해 만든 '명조체'의 흔적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광개토왕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비와 달리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가 아니다. 비신에 부정형의 굴곡이 많이 있으며, 석재 역시 입자가 거친 응회암이다. 똑같은 글자라 하더라도 글씨가 새겨진 부위의 굴곡에 따라 획의 각도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탁본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울퉁불퉁 골곡이 있는 광개토왕비의 비신 모습

  또 방송 상에서 보면 그는 글자의 대조를 할 때 '석회 탁본'을 사용하고 있다. 석회 탁본으로 글자를 대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광개토왕비에서 석회가 칠해진 부분은 신묘년조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광개토왕비에 석회를 칠한 것은 부근에 살며 탁본 장사를 하던 초씨 부자였다. 그들이 석회를 칠한 목적은 '역사 왜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탁본의 편이성을 확보하고, '예쁘고 잘 팔리는 탁본'을 생산하는 데 있었다. 때문에 신묘년조 뿐만 아니라 울퉁불퉁한 비의 표면 전체에 석회를 칠하였다. 즉, 김병기가 방송에서 보여준 비교 작업은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와 또 다른 '석회칠로 오염된 글자'들을 비교 대조하는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비면 전체에 석회칠이 되어 있는 광개토왕비의 모습

  김병기는 글자 조작의 또 다른 증거로 글자가 서로 줄이 맞지 않고 비뚤어져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앞서 말한 대로 광개토왕비의 비신 형태가 심하게 굴곡이 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의미가 없는 소리이다. 게다가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코오 가게노부의 묵수곽전본을 예시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은 애초에 제대로 된 탁본이 아니다. 글씨 형태에 맞추어 윤곽선을 그리고 나서 바깥 부분에 시커멓게 먹물을 칠한 '유사 탁본'이다. 그나마도 조각조각난 종이들을 맞추어 조립한 것이다. 김병기는 사코오본에서 '도(渡)'는 오른쪽으로, '해(海)'는 왼쪽으로 쏠려 있는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글씨가 조작된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코오본에서 다른 글자들은 다 줄에 맞추어 글씨가 배열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사코오의 묵수곽전본을 보면 확실히 신묘년 조(빨간색 박스)에서 '도'는 오른쪽으로 , '해'는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옆의 글자들(노란색 박스)를 보라. '도'의 오른쪽에 있는 두 글자도 일관되게 오른쪽으로 쏠려 있고, '해'의 오른쪽의 세 글자는 일관되게 왼쪽으로 쏠려 있다. 김병기의 주장과 달리 줄이 안 맞는 현상은 다른 글자들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근처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글자들이 한꺼번에 한쪽으로 쏠리는 등 일관된 모습을 띠고 있다. 따라서 글자가 치우쳐진 현상은 조작 때문이라 볼 수 없다. 비신 표면의 굴곡 문제이거나, 탁본 자체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김병기는 자신의 주장이 서예학적인 접근의 결과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입공우'라는 판독은 너무나 무리한 주장,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세번째 글자, '파(破)'가 원래는 '우(于)'였다는 그의 주장을 한번 검토해 보자.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다른 '우(于)'가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여 '파(破)'의 원형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는 광개토왕비문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우(于)'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광개토왕비에는 다른 곳에 '우(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것을 통해 김병기가 얼마나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왼쪽 빨간 박스(A)가 신묘년조의 '도해파(渡海破)'에서 '파'에 해당하는 글자이며, 오른쪽 빨간 박스(B)는 '우(于)'이다. 김병기는 '파(破)'에서 왼쪽 부수인 '석(石)' 부분이 조작되어 붙은 것이라 하였고, 원래 '우(于)'였던 글자에서 첫번째 가로 획을 지우고 그 밑에 일부 획을 추가하는 식으로 조작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 A의 원래 '우(于)'는 크기가 매우 작은 글씨로 상정해야 한다. 또한 오른쪽으로 매우 쏠려 있었던 형태로 이해하여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궁색한 자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B를 보면 광개토왕비에서 '우(于)'는 크기도 클뿐 아니라 정사각형 공간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김병기는 본래 서예가이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광개토왕비의 글씨가 멋지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정작 '入貢于'라는 본인의 엉뚱한 추정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광개토왕비의 글씨를 아주 졸렬한 형태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신묘년조 문장에서 '파(破)'가 원래 '우(于)'였을 것이라는 김병기의 주장은 그냥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김병기가 지나가듯이 한번 언급하고 말았지만 광개토왕비문 연구에서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뜬 원석 탁본은 매우 중요하다. 방송에서는 마치 일본인들이 처음 광개토왕비를 발견했다는 듯이 다루었지만, 실제로 광개토왕비를 발견한 것은 중국인들이었고, 처음 탁본을 뜨기 시작한 것도 중국인들이었다. 집안 지역에서 오래된 고비가 새롭게 발견되자 북경 등지의 서예 감상가와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고, 그 결과 북경의 유명한 탁본가들이 광개토왕비가 서 있는 집안 지역을 며칠 씩 방문하여 탁본을 떠가게 되었다. 나중에 탁본업에 종사하게 된 초씨 부자는 원래 이들을 안내하는 이들이었으나, 어깨 너머로 탁본 제작법을 배우고 나서 급기야 탁본업자로 직업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원석 탁본에서는 해당 글자들이 어떻게 보일까.

 

(*추기 : 가네코본, 미즈타니본, 부사년본이 원석탁본임을 믿을 수 없으며, 임창순본과 혜정본만 원석탁본으로 인정하겠다는 의심병 가진 사람이 있어 임창순본과 혜정본도 추가적으로 공개한다. 물론 이걸 보고도 안 믿을 테지만.)

  석회가 칠해지지 않은 원석 탁본에서는 두 번째 글자인 '해(海)'가 잘 안 보인다. 이 부분의 비신에 크랙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자들 중에서 '해(海)'를 판독불능자로 처리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왼쪽에 물 수변을 인정하지 않고 '매양 매(每)'로 판독하기도 하며, 남아 있는 몇 개의 자획과 전체 문장의 맥락을 감안하여 '해(海)'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나머지 글자들은 획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병기가 광개토왕비는 석회가 칠해지기 전인 원석 단계부터 이미 조작이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석 탁본의 글자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 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탁본은 일본인들에 앞서 중국인들에 의해서 이미 제작되고 있었고, 사코오가 광개토왕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묵수곽전본을 구한 것은 나중 일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 중국인들이 제작한 광개토왕비 탁본의 글자들은 모두 일관되게 위와 같은 자형으로 판독되고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광개토왕비의 원래 글자가 맞다고 판단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를 끝내 부정하는 것은 '일본이 분명 비문을 조작하였을 것'이라는 최초의 선입관이 합리적인 사고 흐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기의 주장처럼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석회를 조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 석회칠은 글자의 획을 지우거나 새로 만드는 게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원석을 조작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있는 글자에 새로 획을 추가해 새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획들은 어떻게 지운다는 것인가. 탁본에 보이는 획은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있는 획을 없애려면 돌에 새겨져 있는 획을 메꾸어 채워야 한다. 원석에서 그러한 작업을 어떻게 하였다는 것일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도 원석 단계에서 글자가 조작되었다는 김병기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탁본업에 종사하던 중국의 초씨 부자는 비면에 석회를 칠한 행위로 광개토왕비를 훼손하고 후대 연구에도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들에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손님들이 좋아하는 깨끗해 보이는 탁본을 떠 팔기 위해서 석회를 발랐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이들의 무지는 결과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큰 해가 되었다. 나는 "차이나는 클라스"가 석회 탁본을 만들어 팔았던 초씨 부자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지식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게 적당히 가공하여 방송하는 것이 과연 교양 프로그램의 본령과 어울리는가.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추가*

  자꾸 내 블로그에 찾아와 김병기의 방식이 과학적라고 떠드는 분이 있어서 포토샵을 이용해 김병기가 원래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형태로 복원해 보았다(위가야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참고하여 포샵질을 해 본 것이다). 자, 한번 이 모습을 '과학적'이고, '서예학적'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참고로 위가야 선생은 만약 당시 고구려 석공이 이런 식으로 글씨를 새겼다가는 목이 날아갔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posted by 기랑 k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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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광개토태왕 2018.01.14 05:07 신고  Addr Edit/Del Reply

    도해파가 맞다고 전해라...

  3. 행인/ 이도학은 중국 학자 경철화의 의견을 따라 '渡海破'를 '渡每破'로 읽습니다. 이도학은 이미 1993년부터 그런 입장을 보였고, 2006년에 출간된 본인의 책 "고구려 광개토왕릉 비문 연구"(서경)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海'로 읽든 '每'로 읽든 전체 맥락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每'로 판독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중국의 경철화인데, 그의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과거 고구려의 속민이었으므로 종래 조공하였다. 그러나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 매번 백제와 신라를 싸워서 모두 이기고, 그들을 자기의 신민으로 삼았다.".

    이도학의 경우는 판독문은 경철화의 안을 대체로 따르면서도 끊어읽기를 다르게 해서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이었으므로 이때까지 조공하였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건너오자, 그때마다 격파하였다. 백제가 (배반하여) 신라를 (침략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합니다. '파백잔' 뒤에 나오는 안 보이는 세 글자를 판독이 아니라 그냥 '추정'을 해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도학의 해석은 짧은 문장 안에서 주어가 왜->고구려->백제로 계속 바뀌는 정인보식 해석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호치 2018.01.14 19:56 신고  Addr Edit/Del

      해(海)자를 매(每)자로 판독하자는 경 교수의 판독대로라면 왜가 신묘년부터 자주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격파했다는 어색한 문법이 되므로 문맥상 이상한 문장 의미가 되는 내용이 되지요

      아니 상식적으로 봤을때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 백제 신라를 격파한다는 전쟁을 자주 한다는 해석 문장이 문법상 상식적인 의미 전달이 결여되는 황당한 색채의 해석 내용이 될수밖에 없고

      애매한 내용이 될수밖에 없지요
      매(每)자의 판독대로라면 왜가 백제 신라를 침략한 주체이지
      아니면

      고구려의 백제 신라 침략을 지원해주는 주체인지 모호해질수밖에 없었고 매양 자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자인 매(每)자대로 구성한다면 신묘년 백제 신라 격파 전쟁이 왜가 주체가 되는 전쟁인지 아니면 고구려의 백제 신라 정벌에 왜가 지원만 하는 보조가 되는 전쟁인지 어느 한쪽이 성립이 안되고 모호성만 강화시켜 주는 문장만 될뿐입니다

      도대체 왜의 전쟁 목적과 침략 경로가 생략되는 이상한 의미의 문장이 성립될수밖에 없습니다 그 판독안 대로라면 말이지요

      해(海)자는 신묘년 문장 구조에서 바다를 의미하는 문자로 매(每)자로 바꾸어서 판독된다면 왜가 바다를 건넌다는 문법은 성립되지가 않지요

      매양 건넌다는 표현만 될뿐이지
      건너는 장소가 육지인지 강인지 바다인지 어떻게 알겠나요 구체성이 결여되고 애매함만 증폭시키는 이상한 문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경 교수의 해석이나 일본측 해석은 문법상 부자연스럽고 자국에 아전인수씩으로 문장을 끼워맞춘 것이라
      객관적으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 기랑 kirang 2018.01.14 20:04 신고  Addr Edit/Del

      호치/ 헛소리는 이제 그만.

    • 호치 2018.01.14 20:28 신고  Addr Edit/Del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하여 매자를 바다를 건넌다는 의미의 문자로 오독한 기랑 그대가 헛소리 하는게 아닌가

    • 태연 2018.08.27 14:35 신고  Addr Edit/Del

      기경량씨, 답변을 하세요, 인신공격하지 마시고, 그러니 공분을 사고 고소를 당하는 겁니다.

  4. ㅐㅐ 2018.01.14 12:38 신고  Addr Edit/Del Reply

    역사학자들이 한문 잘 못 한다 지적했는데 여기 댓글란도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爲臣民 신민 삼다.
    以爲臣民 신민 삼으려 하다.
    以爲臣民以 신민 삼으려 했으므로.

    以를 왜 연달아 썼는지 잘 생각들 해보세요.

    • 야만인 2018.01.14 14:57 신고  Addr Edit/Del

      안온다 하지 않았습니까? 정신병 취급 받는게 억울하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상생활 가능하신가 의문을 제기했던 제 추론이 들어 맞았네요 일상생활 안되시네

      아직도 역사학자들이 한자 모른다는 궤변을 ㅋㅋㅋ 좀 자의적 정의를 남발하는게 아니고 많이 자의적으로 해석 하고 있으신거 모르시죠? 아직도 서예가 말들어야되 하고 싶나 봅니다 아미-호치상 ㅐㅐ님같은 부류들은 왜 자기 객관화는 안되면서 투사심리를 가지고 역사 학자들에게 똥볼을 던지는지 모르겠어요

      저 위에 아미-호치상은 다중이 짓으로 블로그 주인장 역사학자 아니다 전문성 없다 두사람이 의견내는 것처럼 사기치다 여론몰이 음해 하다 들키더니 인신공격 하는 블로그라고 땡깡 부리고 떠났는데 님은 떠난다고 했다 다시 돌아 오셨네 ㅋㅋㅋㅋ 정말 웃기는 분들이에요

    • 태연 2018.08.27 14:37 신고  Addr Edit/Del

      정말 한자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렸을때 외조부님께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여기 가짜 역사학자란 인간들은 한문 독해는 고사하고 중국어나 할 줄 아나 모르겠네요 ㅋ

  5. ㅐㅐ/ 이건 또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신지요? '爲'는 그냥 '~가 되다'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용법이 다양하니, '~로 삼다'라는 해석도 가능은 하죠. 그에 비해 '以爲'는 좀더 확실하게 '~~로 삼다', '~~로 여기다' 정도의 의미이고요, 마지막으로 님이 제시한 '以爲臣民以'은 그냥 끊어읽기를 잘못한 겁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죠. "倭以辛卯年 來渡海 破百殘□□[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를 파하고 신라를 ~~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영락)6년 병 신에 왕이 직접 [관]군을 이끔으로서 백제를 토벌하였다. ). 즉 마지막 '以'은 뒷문장의 시작인 '六年丙申'의 앞에 붙는 거에요. 전체 문장 앞에 '以'가 붙은 사례가 이미 신묘년조에 보이고, 비문 앞쪽에 보면 "以甲寅年九月廿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산릉으로 옮겨 모셨으므로, 이에 비를 세워 훈적을 새겨 기록하여 후세에 보인다.)"의 사례가 있어요.

    상대해 드리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어디서 어설프게 주워 듣고 아는 척하며 허세 부리는 건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나 하세요.

    • ㅐㅐ 2018.01.14 20:28 신고  Addr Edit/Del

      상대해 달라고 한 적 없어요.
      할 말만 한다고 했지...

    • 야만인 2018.01.14 20:58 신고  Addr Edit/Del

      남의 블로그에 댓글 달면서 할말만 한다는거 무례하고 천박한 짓이랍니다 블로그는 소통공간 이전에 개인공간이고
      자기 할말만 하고 싶으면 본인 블로그 만들어서 하세요
      객관과 자의적 해석을 지양하는 분이 역사학자들은 한자모른다는 당신 편견, 일반화의 오류나 떠벌리고 있으십니까

      진인파던 입공우던 도해파던 일본이나 중국이 조작하고 해서 건드렸다고 믿는 분이 객관을 가지고 있으신가 내 입맛에 안 맞는게 주관이지 어째 객관입니까 본인들 주장이 설득력 없다는걸 무의식적으로 느끼니 객관을 붙이는거라 저는 주관적으로 느껴봅니다

      역사학자는 어찌됬든 한자모른다고 모욕을 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야 본인 주장이 정당성을 얻는다고 여기는 거 부터가 유치한 노릇입니다 하도 비전문 비전문 거리기에
      본인들은 어떤 역사학에 전문 전공 인지 부터 밝혀주길 바랍니다

    • 태연 2018.08.27 14:45 신고  Addr Edit/Del

      야만인, 당신도 서울대 국사학과인가? 개인공간이라 했는데 블로그는 개인 공간인 동시에 소통의 장이다. 소통보다 개인적인 부분이 더 중하면 비공개 블로그로 하면되지 왜 아무개가 들어오고 아무개가 글쓰게 해놓았는가? 남아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공부하라, 구시대 교수님들이 일제치하부터 밥벌이로 삼은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교수되고 내 나라의 역사를 밥벌이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6. 호치 2018.01.14 20: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왜가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는다는 以爲臣民(이위신민) 문장이 맞는다고 해석한다면 다음 문장인 영락 6년에 고구려의 백제 정벌의 이유 당위성이 결여되고 백제 정벌의 이유와 상관없는 백제 신라의 이위신민 내용과 문맥구조상 제대로 연결이 안되는등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문맥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왜가 전쟁으로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는다는 이위신민 문장과 고구려의 영락 6년 정벌의 문장과 서로 연결되려면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은 왜에
    대한 고구려의 응징 정벌 내용으로
    영락 6년 병 신 년 내용을 서술해야 되는데

    백제를 신민으로 삼은 가해자인 왜를
    응징하지 않고 피해자인 백제를
    정벌한다는 해석 내용은
    개연성과 문맥이 심하게 결여된
    문장 내용이 될수밖에 없지요

    이(以)자는 농사 기구인 쟁기로 밭을 간다는 의미가 담긴 써 이자로 즉 은유적인 표현 성격이 강한 문자이지요 즉 까닭 이유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하여 함으로서라는 의미가 여러가지 의미 사용 가능함으로 문법상 하여 함으로서는 주역 주체가 어떤 대상을 목적으 맘대로 동작하여 대응 처리하겠다는 의미가 강한 낱말들로

    왜가 주어가 된다면 以써 이자의 문맥 연결 대상이 될수가 없고 왜가 신묘년의 주체가 된다는 주장이 성립될수가 없습니다

    신묘년의 정벌 대상은 써 이(以)자가 가리키는 대상 국가로 가리키는게 문법상 맞는 법이지요

    그럼으로 도해파의 주어는 왜가 될수 없습니다 일본측의 아전인수씩 문장 해석일 뿐이죠 객관적인 문법을 위배해가며 구성한
    억지 해석일 뿐이지요

    以 써 이자의 의미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게 일본측의 신묘년 왜 주어 해석입니다

    • ㅐㅐ 2018.01.14 20:31 신고  Addr Edit/Del

      본인도 以爲를 '~여기다' 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걸 보니, "신민 삼았다"고 단정한 해석이 그렇게 확실한 건 아닌 걸 알았겠죠.

      爲 다음 직책이 오면 "~삼다"가 정 해석일텐데, 爲는 "~되다" 以는 "강조" 라니.... 정말 역사학자들의 한문 실력은 인정할 수가 없네요.

    • 야만인 2018.01.14 21:16 신고  Addr Edit/Del

      아미-호치야 얼굴이 철면피구나 ㅋㅋㅋㅋㅋㅋ 아직 그러고 있냐 기랑님이 비전문적 주장한다면서 기랑님 다리 붙잡고 개처럼 허리 스윙을 하고 있느냐 아미 호치 닉네임 바꿔가면서 기랑님이 역사학자 아니라고 여론전 벌린거 부터 해명해 보거라 전문성 따지고 한자 해석 따지기 전에 비열한 술수 부린거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거라

      도해파가 안보인다 진인파이던 인파이던 입공우던 어느것이 원형이라고 생각 하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해석을 곁들려 주려므나 호치-아미상아

      위에 쭈르륵 남겨진 댓글이나 지우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굴거라

      너는 기랑님과 논쟁이나 소통을 하러 온게 아니라 어떻게든 이 블로그 주인장을 흠집내러 온것이잖아 그러니 저런 마운팅을 시전하고 곤조를 부리는 것이겠지

      '그리고 한자에 무식한 미국이
      대왕비 연구하면 그게 얼마나
      전문적인 정확한 연구가 되겠냐 '

      미국인이라서 한자에 무식하다는 무식하고 천박한 소리나 더 이상 꺼내지 말거라 미국과 미국인 학자 학문과 국가를 동일시 하는 오류란다 한국사람이 영문학을 공부하고 불어 독어 공부를 하는건 무식자의 발버둥이더냐 ㅋㅋㅋㅋㅋ 학문이 태생적 신체 기관이더냐 ㅋㅋㅋㅋ 타고남에 따라 전문 비전문 무식과 유식이 나눠지게 ㅋㄱㅋㅋ 배우고 익히면 날로 발전하는 것이 배움일진저 촘스키는 언어학연구를 괜시리 하였구나 아미-호치상아 찌질한 발버둥과 병기의 잡설을 보고와서 사이비 유사역사적 주장을 선동하지 말거라 증거와 근거를 들고오는 객관은 1도 없으면서 말이다 비루한 망아지 같은 위인아 훠이 훠이

    • 태연 2018.08.27 14:48 신고  Addr Edit/Del

      호치님의 의견이 매우 설득력이 있는 주장 같습니다. 이런 분들이 주류 보수 역사학자가 되셔야 정기가 바로서는데, 어디 노론 벽파의 논리나 정립하기에 딱 맞는 것들이 역사학자를 한답시고...ㅉㅉ

  7. 한문 문법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초딩 수준의 아무말 대잔치를 끝도 없이 펼치고 있네요. 이후 저들의 말은 그냥 공해로 간주하고, 블로그 주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차단하든지 삭제하겠습니다. 이들의 무지와 분탕질은 지금까지의 글만으로 충분히 증명됩니다.

    다른 분들도 상대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삭제 과정에서 다른 분들이 단 덧글들이 함께 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 야만인 2018.01.14 23:27 신고  Addr Edit/Del

      닉네임 분간되게 캡쳐 떠 놓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도 이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포스팅 매번 잘보고 갑니다

    • 태연 2018.08.27 14:50 신고  Addr Edit/Del

      이런 일방적인 주장이나 홍보하려고 적어놓는 블로그에 누가 와서 당신 주장을 수용하겠나? 존경하는 교수님 보여주려고 만든 블로그인가? 내 나라 역사를 치욕스럽게 해놓고 아무 죄의식을 못느끼는 그 양심에 매우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하겠네 ㅋ

  8. 대마왕 2018.01.21 09:59 신고  Addr Edit/Del Reply

    명쾌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식적으로 2005년에 나온 이 주장이 왜 학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 방송이라면 생각하고 방송을 해야지요. 내가 글쓰다가 막혀서 그렇다가 말이 됩니까? 이 방송은 이제 귀면와가 치우의 형상이라는 검증 안된 주장까지 하더군요. 명쾌한 해석에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9. 서예하는 2018.02.03 10:02 신고  Addr Edit/Del Reply

    일단 역사를 배제하고 저도 서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入貢于에 대한 역사적 기록도 중요하지만, 일단 본 강연자가 말했듯이 서예도 하나의 미술분야이기 때문에 획 하나하나가 예술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석을 새기는 장인의 육감과 미적감각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미술의 도상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광개토대왕의 글씨체와 渡海波의 글씨체는 이전의 광개토대왕 원본 글씨체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본 강연자의 내용을 100프로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서 미세한 차이라는 우선 변조하려고 맘을 먹은 사람이 되도록이면 이전의 원본체와 가장 흡사하게 새길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차이가 있는것는것이다.

    본 필자가 글씨의 삐뚤어짐과 원본에서 조차 약간의 글씨체에서 보여지는 차이는 우선 비문을 새기는 장인(고구려 사람)이 1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일단 새기는 장인은 우수한 사람이였을 것이고, 그 시대상에 맞는 글씨체를 충분히 숙달하고 임하였을것이다.

    따라서 그런 과정속에서의 차이와 몇 천년후의 일본인이 사람들의 글새김은 아무리 유사하게 새긴다고 하여도 시대성에 따른 느낌을 줄수 밖에 없다.
    이는 회화를 그릴 때 극명하게 들어난다. 그림을 최대한 모사(똑같이 그리는것)한다 하더하도 원작자는 회화의 유연성과 자유로움이 드러나는 반면 모사자는 본의 아니게 필력이 둔탁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머무름이 많다.

    방송에서 그러한 예를들어 일본이 그당시에 자주 사용하였던 명조체를 들었는데, 이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가령 명조체가 아니더라도 서예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느낌이 다른것이 맞다.
    이는 서예를 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육감적인 부분이지만 사실이 육감을 역사적 사료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본 강연자는 서예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필자가 말한 역사적 사료가 만약 변질 되었다면, 서예의 미적감각을 통해 해석할 수 밖에없는 문제를 담고있다는 것이다.

  10. 피닉스 2018.05.13 23:01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의문을 확! 날려 버렸네요. 모든 논란이 왜가 한반도에 진출했을리가 없다는 기성관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왜가 한반도 남부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하면서 왜에 대한 태왕의 공격 내용이 비문에 나타나지 않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11. 피닉스/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광개토왕비에는 광개토왕이 왜군을 격파하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영락 9년(399)에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을 해서 신라를 공격하자, 영락 10년(400)에 군대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침범한 왜를 쓸어버리는 내용이 나오고요, 영락 14년(404)에는 왜가 직접 대방 지역(황해도)을 공격해 오자 역시 궤멸시켜 버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 23 2018.05.31 21:34 신고  Addr Edit/Del

      이상하게 생각 안할수가 없는게 일본측 해석 자료대로라면 대왕비에서는 영락 1년인 신묘년에 왜가 백제를 공격해 신민으로 두었다고 기록하면서 백제를 공격한 왜를 자국 고구려가 제재하는 내용은 없을 정도로

      영락 6년 백제 정벌의 당위성을 떨어뜨리게 만든다는 점이지요

      가해자인 왜를 놔두고 피해자인
      백제를 공격하는게 정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게 정벌의 당위성과 거리가 먼
      것이라는 새삼 알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신묘년 기사들은 영락 6년 백제 원정 기사보다 앞 구절 내용들이고 영락 6년 백제 정벌의 직접적인 원인 동기를 드러낼 내용들이 아닙니까?

      그럼으로 일본측 해석대로 영락 6년의 정벌전쟁의 이유와 당위성을 드러낼 신묘년 기사에서 왜가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면 영락 6년의 정벌 대상은 백제가 아닌 왜로 서술되어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문맥상 영락 6년의 정벌 전쟁의 원인과 당위성이 앞 구절인 신묘년 내용과 맞아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왜가 아닌 백제로 기술된다는건 신묘년 왜의 백제 신민복속이라는 일본측 해석내용은 논리상
      부자연스러울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대왕비의 왜군 전투 기록은
      광개토대왕이 능동적으로 주도해 정벌하여
      치룬 전투가 아니라 동맹국의 요청으로
      치룬 수동적인 성격의 전투라 정복사업을 펼친 대왕의 업적을 기리는데 거리가 먼 서술이지요

      일본측 신묘년 해석내용대로 영락 1년에 백제 신라를 공격한 무도한 왜를 광개토대왕이 재위 10년이 되도록 정벌 제재하는 등으로 전쟁하지 않다가 신라의 요청이 있고서 왜와 전쟁하였고

      그리고 왜와 전쟁하는것도 그냥 신라 영토내에서 침입한 왜군을 몰아내는 성격이라 수동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로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이게 능동적으로 여러 국가에 대한 정벌 전쟁을 치루는 고구려의 국가적 현실성이 담겨진 내용인지 의심될수밖에 없지요



    • 기랑 kirang 2018.06.02 10:07 신고  Addr Edit/Del

      23/ 고구려가 신라를 침입한 왜를 몰아내는 것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라 보는 건 그냥 본인 생각이시죠.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서술 방식은 백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닙 아닙니다. 원래부터 혐오하던 백제를 왜의 앞잡이로 전락했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것으로 백제를 두 번 죽이는 서술 방식이죠.

      광개토왕비의 정벌 기사는 전쟁에 철저하게 명분을 부여합니다. 왕이 영토 확장에 눈이 먼 전쟁광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정의의 군대를 움직이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거죠.

    • 23 2018.06.02 12:14 신고  Addr Edit/Del

      대왕비의 고구려 왜 전쟁 서술 성격에 대한 제 글의 취지를 이해못한 모양인데

      대왕비에서 경자년 신라 구원 전쟁이나 갑진년 대방지역 방어 전쟁 등 이런 왜와의 전쟁에 임하는 고구려의 모습은 마치 능동적으로 왜의 영토를 정벌 공격하는 등의 적극적으로 임하는게 아니고

      주로 동맹국의 요청이나 동맹국이나 자국 영토가 공격당할때 방어적으로 임하는 차원의 소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되었다는게 저의 취지입니다

      다른 국가를 그렇게 야멸차게
      공격하던 고구려가 일본측의
      해석 자료대로 동맹국이나
      자국을 공격한 왜를 왜 한번도 공격못한 것인가요 대왕비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 아주 이상한 것이지요

      대왕비에서는 백제를 혐오하여 백제가 왜의 신민으로 폄하 서술했다고 주장하는데

      대왕비에서는 백제가 왜의 앞잡이 신민이었다고 기록한 신묘년 기사의 시작 내용에서는 백제가 옛날부터 자국의 속민이었다고 기록하여 고구려 사가들이 백제를 혐오했다면

      신묘년 기사에서 백제를 자국과 같은 혈연 같은 민족을 의미하는 속민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지요

      철천지 원수 대상인 백제를 고구려가
      미쳤다고 같은 핏줄을 가진 동족 국가로 기록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속민이란 용어는 백제 혐오증과 거리가 먼 성격의 용어입니다

      그럼으로 백제 혐오증으로 왜의 존재를
      과장했다는 주장은 백제 속민이란 구절만 봐도 설득력이 떨어지죠

      그럼으로 일본측의 신묘년 해석내용대로 왜의 침략으로 왜의 속국이 된 피해자 백제가 고구려의 정벌 대상이 된다는건 가해자를 놔두고 피해자를 토벌한다는 이야기가 됨으로
      앞뒤가 맞지 않은 엉터리적 대의 명분이 되기 때문에

      대왕비 사가들이 자국 고구려를 그런 피해자 국가를 침략하는 비겁하고 치졸한 국가로 크게 묘사하는 신묘년 기사를 그렇게 서술한다?

      이치로 봐서도 앞뒤가 안맞는 모순된 주장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4 17:58 신고  Addr Edit/Del

      23/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정벌 기사가 소극적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님 혼자만의 가치 판단이라는 겁니다. 님 주장대로라면, 6.25 전쟁 때 남한을 도와 참전한 미국은 참 '소극적'이었네요.

      속민이라는 용어가 핏줄을 가진 동족 국가를 의미한다는 것도 그냥 혼자 생각이시고요.

      애초에 광개토왕비에서는 왜 백제를 일괄되게 '백잔'이라고 표기하고 있을까요.

      학문이라는 건 님처럼 자폐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 말 대잔치는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 解明 2018.06.04 20:35 신고  Addr Edit/Del

      기랑님이 방송에서 '섬약한 지식인'을 표방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홍타이지가 '관온인성황제'라고 자칭한 것과 비슷한 듯합니……. ^-^;

    • 23 2018.06.04 20:50 신고  Addr Edit/Del

      기랑님 /정벌 기사가 아니라 전쟁 기사이지요 객관적인 용어 관념좀 제대로 이용하세요

      그리고 미국은 남한을 침공한 북한 영토로 침공해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하였지만 대왕비에서 고구려는 그런 적 있나요

      미국의 경우와 고구려의 경우를 억지로 비교하는 것도 아전인수씩 억지 추론에 가깝고

      그리고 원수 국가인 백잔을 속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백잔이라는 용어가 고구려 사가들이 백제를 증오하여 폄하한 용어라는건 객관적 증거가 없는 님의 자의적 추론일뿐
      백제를 증오하여 폄하한 용어라면
      백제의 반고구려 행적을 대왕비 영락 6년 이전의 신묘년 을미년 기사에다 그 행적들을 실어야 하지요

      그런데 그 행적들은 없는 것을 보면
      백잔이라는 용어가 멸시적인
      성격이라는건 좀 비약이지요

      백제에 대한 고구려 시대의
      고유적 호칭이지 멸시적인 의미가
      담겨진 것인지를 불확실하지요

      자국에 소속된 백성을 의미한다는 속민이라는 구절을 보면
      백잔 용어의 폄하설 추론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학문을 할때에 합리적인 상식 선에서 하는 것이지 황당하고 횡설수설하는 모순된 주장을 함부로 하는게 아닙니다

      그런건 광신도에게나 나타날 모습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5 10:22 신고  Addr Edit/Del

      23/ 그래서 '백잔(百殘)'이 무슨 뜻인데요?

    • 解明 2018.06.05 11:18 신고  Addr Edit/Del

      합리적, 객관적이라는 단어 자주 쓰는 사람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듯한 건 기분 탓일까요?

    • 기랑 kirang 2018.06.05 11:25 신고  Addr Edit/Del

      解明/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자기객관화가 전혀 안 되는 사람이 '객관적', '합리적'이라는 용어를 반복하는 것을 바라보는 건 참 피곤한 일이지요.

    • 23 2018.06.05 20:24 신고  Addr Edit/Del

      기랑님 백잔의 뜻은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고구려 당시에 백제를 부르던 용어라고
      말이에요?

      백잔의 뜻은 새삼스럽게 알면서
      생뚱맞은 티를 내시는지

      그리고 백잔과 속민은 문맥상 서로 성립될수가 없는 단어들이고 역사학의 기초가 결여된 사람만이 역사학의 기본 핵심인 객관성과 합리성을 피곤하게 여기지요

    • 기랑 kirang 2018.06.06 13:40 신고  Addr Edit/Del

      23/ 그래서 '백잔(百殘)'이 무슨 의미냐고요.

    • 태연 2018.08.27 14:54 신고  Addr Edit/Del

      이봐요, 대방이 황해도라는 증거를 대보시오ㅋ 유적이 있습니까? 사료가 있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이병도의 황해도 수안 말고는 없는걸로 아는데?

    • 태연 2018.08.27 15:05 신고  Addr Edit/Del

      백잔의미 답변에만 집착하는걸보니 어떻게든 말싸움에만 능하다는, 정치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호태왕비문의 백잔의 원래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전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다 추측이지, 증조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원수이기에 백제를 비하하는 의미, [백제 잔당] 정도, 그러는 당신은 의미를 확실하게 아나요? 5세기 사람이오? 아니면 다른 사료나 유물로 백잔의 의미를 밝혀줄 실마리라도 혼자 알고 계시나?ㅋ

  12. 물리 2018.05.22 05:05 신고  Addr Edit/Del Reply

    ㅉㅉ!
    물리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하고 싶은것은
    돌의 굴곡이 있을때 석공들은 어떻게 글씨를 새겨 넣는지 , 그것을 탁본으로 뜨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같은 가장 기초적 연구 즉 석공과 서예가 그리고 그것을 탁본 뜨는 사람등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하기를 권합니다.

    • 기랑 kirang 2018.05.23 21:28 신고  Addr Edit/Del

      그런 거 한다고 해서 없는 글자 나타나지 않습니다.

    • 플리스덴 2018.05.31 21:58 신고  Addr Edit/Del

      검증 연구를 해보지 않고서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 단정하는 자체가 문제이지요

      대왕비 건립 당시 고구려 석공의 글씨 조각기술이 어떤한지를 글씨체를 분석하는 것 외에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검증은 대왕비 실물 판독을 하는 것이지만 그 나마 석회로 변형 훼손된 터라 대왕비 원문들이 그로 인해 사라져서 연구가 어렵다는 점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2 10:13 신고  Addr Edit/Del

      무얼 검증 안 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석회 칠해지기 전에 뜬 많은 원석 탁본에 대해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졌습니다.

      검증이 덜 되었다 생각하시면 본인이 한번 검증해 보시고 논문으로 쓰십시오. 그러면 그 검증 결과물을 학술적으로 검증해 드리겠습니다.

    • 플리스덴 2018.06.02 13:16 신고  Addr Edit/Del

      대왕비 실물 사진자료로 통한 신묘년 글씨체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혜정본 같은 원석탁본은 모양이 희미하고
      애매하여 원석탁본의 글자가 어떤 모양인지 100% 정확하게 판독안된 상태입니다

      자신이 제시한 혜정본의 글자 내용을
      제대로 보십시오 얼마나 훼손 심하여
      알아보기가 힘든지 그렇게 알아보기 힘든 것을 어떤 특정한 글자라고 단정짓는거 비약이지요


    • 기랑 kirang 2018.06.04 17:53 신고  Addr Edit/Del

      그 단정은 보통 '조작설'을 주장하는 분들이 하곤 하지요. 그냥 사심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판독하면 됩니다.

    • 플리스덴 2018.06.04 20:38 신고  Addr Edit/Del

      일본측의 신묘년 도해파 해석을 맹신하는 분들의 단정도 거기 못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실증적 눈으로 판독하면 될것이지요

    • 태연 2018.08.27 15:32 신고  Addr Edit/Del

      물리학 전공자의 정당한 제기에 기경량 답글 클라스 보소ㅋㅋ

    • 태연 2018.08.27 15:34 신고  Addr Edit/Del

      사심없이=우리의 밥그릇을 건들지 말고 ok

      이미 일본놈들이 100년전에 탁본뜬 그대로 보고 해석하고 보면된다 이 논리네, 이게 논리냐?

  13. 오호 2018.05.26 09:13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문가의 권위를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4. 한국인 2018.05.28 01:49 신고  Addr Edit/Del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길게 설명하시느라 수고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인 저도 방송을 보고 어느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으나
    근본적으로 비석이 훼손되었고 실물을 직접 조사하는 게 다소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어 이 지식에 관하여 마침표는 찍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볼 수 있는 글이 있어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마침표는 찍지 않고 하나의 과정중에 있는 지식으로 가지고 있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김병기 서예가께서도 반론에 대해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고 바뀔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의견을 내신 것이니
    이걸 받아들이는 것은 시청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필자께서는 지식의 오류를 우려하시는 것이겠지만 이또한 과정이 아닐런지요
    아직은 명확한 답을 낼 수 있는 때는 아닌 것 같아 좀 더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잘 보고 갑니다 ^^

    • 기랑 kirang 2018.05.29 12:13 신고  Addr Edit/Del

      한국인/ 서둘러 마침표를 찍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주장을 두루 접하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시면 됩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접한 채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쪽이지요. 제 글이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드렸다면 다행입니다.

  15. 잘보고 갑니다 2018.05.30 21:57 신고  Addr Edit/Del Reply

    솔직히 국뽕 주장 맘에 들진 않지만 표현의 자유는 있겠죠. 근데 그걸 방송에서 교차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방영한 부분은 좀 씁쓸하더군요. JTBC라 좀 더 아쉬운 부분. 역사란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될텐데 말이죠. 전세계 어느 학자가 그 굴레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만은 한중일은 유독 특히 고대사에서 민족주의적 관점이 심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고작 200여년 역사의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인게 작금의 현실인데 말이죠.

    • 23 2018.05.31 22:01 신고  Addr Edit/Del

      역사는 탈민족주의 민족주의 이런 이분법적인 주관적인 프레임으로 진실추구하는게 아니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주의라는 관점에서 진실 추구하는 것이지요 탈민족주의도 알고 보면 편향된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합니다

      탈민족주의에 유리한 진실이든 민족주의에 유리한 진실이든 그걸 가리지 않고 진실추구하는게 역사학의 기본 소임이지요

  16. 미스터선 2018.06.19 11:34 신고  Addr Edit/Del Reply

    솔직히 이건 차클 흑역사 맞음ㅋㅋ

  17. 잘 읽었습니다 2018.07.04 23:11 신고  Addr Edit/Del Reply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얘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을 본인 인생이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나 일본의 광개토왕비 조작설 같은 것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기원해봅니다. 역사는 사실을 추구해야 하지 내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역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댓글들 읽어보니 역사에서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과정을 끼워맞추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 기랑 kirang 2018.07.05 11:40 신고  Addr Edit/Del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23 2018.08.20 20:38 신고  Addr Edit/Del

      소통 운운하기 전에 기초적인 객관적 상식과 근거부터 갖추고 소통 운운해야 되지 않을까요

      광개토대왕비 같은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자료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당대성 객관성 정확성 자연성 등 이런 구성 요건들이 많이 결여되어 이런 문제 많은 자료가 조작 의혹에 휩싸이는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런 자연스런 논쟁 규명을 무슨 특정 사관의 시각으로 이상한 생트집이라고 폄하하여 학문의 기본 진리와 거리가 먼 작태를 보이니까 문제이지요

      역사는 객관적 근거에 의해 규명되어야할 학문이지 주관적인 조작 자료에 의존하여 구성되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려 주고 싶네요

    • 기랑 kirang 2018.08.20 22:56 신고  Addr Edit/Del

      23/ 그러니까 말입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백잔(百殘)'이 무슨 의미인지는 공부해 오셨습니까?

    • 태연 2018.08.27 15:28 신고  Addr Edit/Del

      그 놈의 백잔은 엄청 물고 늘어지네, 궁금하면 스스로 찾아봐, 동문서답이 학자가 할 일인가? 이게 소통인가?

  18. 오모리 2018.08.25 09:02 신고  Addr Edit/Del Reply

    23/ 광개토왕비 전체 내용에서 백잔(백제)가 결코 왜에 의한 '피해자'로만 규정되지 않죠. 그 피해자가 왜 영락 8년인가 9년조에는 왜와 통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을까요. 비문을 23님 본인이 보고 싶은 구도대로만 해석하니 앞뒤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지요. 23님처럼 보면 왜는 일본학자들의 주장대로 정말 한반도 남부에서 종횡무진했던 강력한 세력이 되는 것이구요. 실제로는 백제가 고구려에 대한 대항전을 주도했다는 것이 학계의 해석입니다. 손바닥만한 지식으로 아는 척 좀 고만하시죠. 아니면 토론에 제대로 응하시든가.

    • 태연 2018.08.27 15:48 신고  Addr Edit/Del

      왜가 백제를 칠 이유도 없고 기록도 없다. 생전 왜가 백제를 공격했다는 사료를 듣도 보도 못했는데 무슨 근거로 왜가 백제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고 하는건가?

    • 가전 2018.09.11 18:34 신고  Addr Edit/Del

      오모리 / 논란의 핵심 요점을 이해못하는 모양인데 대왕비 논쟁의 핵심 요점은 신묘년 기사에 일본측의 해석 내용 맞냐 틀리냐가 관건이지요 무슨 쌩뚱맞게 백제가 왜와 화통했다는 영락 9년의 기사를 들먹여서 신묘년 논쟁의 본질을 흐리나요

      백잔이 왜와 화통했다는 영락 9년의 기록이 신묘년조의 일본측 해석 내용의 신빙성을 치켜세울만한 내용이라도 되는가

      신묘년조의 내용은 비문 줄거리에서 전개될 광개토태왕의 남방 정벌의 서막을 여는 내용이라 백제 정벌 배경과 직결된 내용이라 논란이 될수밖에 없지

      영락 9년의 백제의 왜 화통 내용은 나중의 일이고

      문제는 신묘년 이전에 백제가 고구려에게 원수될만한 짓을 했다는 내용이 존재했는냐가 관건인데 일본측 신묘년 해석 내용에 의하면 백제는 본래부터 고구려의 원수였다는 내용은 없고 고구려와 같은 민족을 의미하는 속민이라고 백제를 그렇게 기록될 정도로

      백제를 가해자로 묘사했다는 님의 주장과 얼마나 거리가 먼것인지 아시오

      기초적인 아이큐를 키우고서 제대로 답변하던가 이거 뭐 초딩보다 못한 수준의 엉성한 답변을 듣는 것도 아니고

      신묘년조의 내용은 남방 정벌의 시초를 알려주는 핵심적인 내용인데 신묘년조의 내용에 백제가 고구려와의 전통적 관계에서 속민관계였다는 내용은

      상식적으로 백제가 가해자로 묘사된다는 님의 주장과 거리가 먼 근거 내용이지 일본측 해석 내용을 그렇게 믿으면서 일본측 해석 내용에 나오는 백제 피해자설을 왜 그렇게 부정하는가

  19. 태연 2018.08.27 15:26 신고  Addr Edit/Del Reply

    나는 이 블로그를 우연히 검색하다가 알게되어 방문하였는데, 이 기경량이라는 인간의 언변을 여기서 보아하니, 그 도량의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너희같은 친일매국역사학 추종 전공자들과 뭔가 토론은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어디 무슨 말을 하나 보자, 어떤 해석이 있기에 JTBC에서 불렀는지, 방송이 차마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지 알고자 왔는데 글들이 죄다 어떤 한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로서의 소견이 아닌, 소위 패거리주의, 국사학과 카르텔에 입각한, 그저 자신의 숙주세력에 잘보이기 위한 몸부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친일매국세력과 얼마나 같이 명맥을 유지할지는 모르겠다만 분명히 알아둬라,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것만이 매국이 아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네 실없는 소리들이 어리석은 대중과 연예인들이 현혹되어 그나마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의 실체조차 혼란스러워 하고 나아가 마음속에서부터 영혼이 쪼그라든 민족으로 남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곡 과장하여 국수주의적인 역사관으로 재정립하자는게 아니다. 최소한 너희들이 그리도 추종하는 100년전 조선사편수회 중심의 역사관은 처음부터 다시 연구해야 학자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들의 연구에서도 필요한건 갖다 써야겠으나 그런 노력도 없이 적당히 배우고 학위 딴 뒤에는 카르텔의 밥그릇을 수호하는 홍위병이 된 들, 너의 영혼이 과연 우리의 조상님들 앞에 떳떳하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최소한 있는 사료와 유적은 연구해야 할 것 아닌가? 홍산문화유적지는 가보았는가? 발해만과 진황도, 갈석산, 고려 천리장성 지역은 답사했나? 그들이 말하는 동이와 동호가 뭐를 의미하는지 생각은 했나? 아니면 다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건가? 지속된 친일매국식민사학의 전파 행위는 그대가 다 알고서 이런 망언들을 하는거라 믿겠다. 강제징용당하신 외조부님께 천자문을 배우고 유치원때 친일매국역사책부터 시작하여 10대 후반에 이십사서를 떼고 지속적으로 가슴으로부터 우리 나라 역사를 사랑하고 공부해 온 국민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 사기를 치기 바란다.

    • 오모리 2018.08.28 09:20 신고  Addr Edit/Del

      사이비들 특징이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로 호통. 전형적인 꼰대마인드. 남의 글이나 제대로 읽으시죠. 나는 왜가 실제로 백제를 쳤다고 한적 없음. 23에게 비문의 작성 의도를 놓고 얘기한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문맥 파악도 못하는 수준으로 민족사학 함부로 들먹이지 마시오. 정인보, 신채호 선생은 그런 수준으로 남의말 비판한적 없소.

    • 가전 2018.09.11 21:03 신고  Addr Edit/Del

      오모리/ 역사학의 기초도 배우지 못한 무지한 것들이 전문가 보고 사이비 운운하는 꼬락서니가 우습지 않은가요

      상대글도 논리가 있어야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글을 사람의 인지상정으로 무턱대로 받아들여지는줄 아나

      역사 논쟁에서는 글의 논거가 중요하지 그따위 유치한 꼰대주의 타령으로 나대는게 아니다

      상대방과 어떤 테마에 대한 논쟁을 할때 그 테마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논쟁해야지 논쟁의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은 억지라는 것을 아셔야지

  20. 2018.08.29 16:26 신고  Addr Edit/Del Reply

    실제로 왜로 불리던 마한 보라국이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죠. 그리고 보라국 사람들이 포상팔국의 난을 주도하잖아요. 왜가 바라를 건넌다는 것은 보라국이 바다를 건너서 신라를 정벌하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마한 보라국은 3세기 이전까지 어느 나라에도 조공을 하지 않아서 왜로 불리웠죠. 고구려도 마한 보라국이 조공은 커녕 백제를 식민화하고 신라를 공격하며, 황해도까지 침공해오자 이를 왜라 칭하며 공격을 한 것이죠.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석됩니다.

    • 오모리 2018.08.29 17:46 신고  Addr Edit/Del

      재밌네요. 저도 볼테니 사료를 한번 제시해보세요.

    • 가전 2018.09.11 21:07 신고  Addr Edit/Del

      자의적인 해석일뿐 개연성과 구체적 근거가 담겨진 해석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많지요 마한이 왜로 불린다는건 추측일뿐

      대왕비 일본측 자료의 왜는 한반도 세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일본열도 세력을 가리키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내가 식민 사관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지만


      게다가 대왕비 사본 자료의 진위 논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쪽의 일방적 해석자료에 의존해서 너무 깊이 나가는건 문제가 많지요

      일본측의 대왕비 해석 자료에 나온 왜의 실체를 규명하는것 보다 일본측의 해석 자료의 진위 여부부터 규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왜의 실체 규명은 대왕비 해석본의 진위 논쟁이 해결된 뒤에 해도 늦지 않지요

  21. 궁금 2018.10.18 21:15 신고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병기 교수의 주장은 다른 한국사 선생님도 엄청 화를 내시면서 설명하시던데요. 30년 전에 깨진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다고 말이죠. 기경량 교수님 반응과 비슷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해석 부분이 조금 달라서 질문인데요.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이 문장에서 기경량 교수님은 고구려가 왜의 존재를 과장해서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빛내기 위함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하셨고요. KBS 역사그날에 출연하신 이영식 교수님도 기경량 교수님처럼 해석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한국사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해석하던데 이런 해석도 학계에서 많이 받아들여지나요?

    =======================
    비석에 쓰여진 글은 어떻게 끊어 읽느냐가 중요하다.

    비석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넜다.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깨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여기서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넜다.'는 때의 부사절이고
    전체 주어는 고구려이기 때문에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깨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의 주어는 일본이 아니라 고구려이다.

    당연 주어는 고구려이기 때문에 생략한 거다. 일생생활에서도 주어가 자기 자신이면 생략하는 거처럼...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정인보도 이런 주장을 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강의한 또다른 선생님의 유튜브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NK5puca7GGY

    위의 내용 복사하기가 안 되면
    유튜브에서 '한나 TV 임나 일본부설 반박'을 치면 나오네요.

    유튜브에 나오는 선생님도 주어 생략이라고 보더라고요. (주어 생략이라는 설명은 같지만) 차이가 있다면 유튜브에 나오는 선생님은 도해파 앞에 주어가 고구려이다는 점이 다르긴 하네요.
    ====================


    이런 주장도 학계에서 많이 나오는 건가요?

    위의 선생님들 해석은 김병기 교수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지만 기경량 교수님의 주장과도 조금 다른 거 같아서 질문 드려봅니다.